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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8-05-06 04:08:45, Hit : 16691, Vote :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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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itmembers.net
Subject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어린이날이었던 어제 오후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이승의 손을 놓으셨습니다. 작년에 폐암 선고를 받고도 담배를 끊지 않았고, 지난달 뇌종중으로 쓰러져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다 끝내 숨을 거두었다 합니다. 위 시는 월간 <현대문학> 4월호에 실린 그의 마지막 신작시 <옛날의 그 집>입니다.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는 말에서 그의 기구한 삶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삶을 버리고 가니 얼마나 홀가분했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이가 이처럼 이승의 손을 홀가분하게 놓지는 않습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종했던 송애 김경여는 죽기 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평생 아버님의 얼굴을 알지 못한 채 홀로 어머니만을 모셨다. 효도로 봉양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정성스러운 뜻이 얕고 얇아 하루도 편안히 즐겁게 모시지를 못했다. 이제 연세가 여든이신데 급히 내가 먼저 돌아가게 되니, 내 마음의 아픔이 어찌 끝이 있겠느냐. 너는 모름지기 내 지극한 뜻을 알아, 온갖 일에 받들어 봉양하여 마땅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해라. (...) 할 말은 많은데 기운이 다해가는구나.
할 말을 미처 다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였을까요. 부모가 되어보니 그 마음 미루어 짐작할 만합니다.

    내가 불초하여 조정에 선 것이 거의 40년인데도 위로 임금께 미쁨을 얻지 못했고, 아래로 한 조정에서 믿음을 받지 못했다. 마침내 죽게 되었으니 누구를 탓하겠느냐. 너희는 나를 경계로 삼아 과거시험에 마음을 두지 마라. 오직 독서하고 몸가짐을 삼가는 데만 힘쓰도록 해라. 손자들 중에 혹 총명하여 애석하게 여길 만한 아이가 없지 않을 것이다. 밤낮으로 가르치고 다스려 충효로 이어온 집안의 오랜 가풍을 실추시키지 않도록 해라. 그리하면 내가 지하에서도 눈을 감을 수 있겠다. 나머지 일은 죽음이 임박한지라 다 말하지 않는다.
조선 후가 노론 4대신 중의 하나였던 한포재 이건명의 유언입니다. 간결하고 힘이 있지만 유배지에서 사사되면서 급히 써내려간 듯하여 읽는 이의 마음이 아픕니다.


   제   목 :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지은이 : 정민, 이홍식 엮고 옮김
   펴낸곳 : 김영사 / 2007.4.26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13,000

정민 선생과 그의 제자 이홍식 박사가 엮은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조선시대 명문가의 가훈과 유언을 모아 해설한 책입니다. 가훈 21편과 유언 10편이 담겨 있습니다. 책 제목인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신숙주가 쓴 가훈에서 따온 말입니다.

"대저 재주가 높고 빼어난 인물이 되는 것, 호걸이 되는 일은 내가 실로 바라는 바가 아니다. 다만 너희가 삼가 이 가훈을 지켜서 날마다 삼가고 삼가 '삼가는 선비'로 불리며 선조에게 부끄러움을 끼치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고 하며 여섯 항목의 가훈을 남겼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아버지들은 대개 한 시대를 풍미하였습니다. 재상으로 살았고, 또 정쟁의 화를 입어 유배되거나 사사되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던 아비가 제 자식에게는 한결같이 삼가고, 겸손하라 말합니다. 호걸처럼 되기를 바라지 않고(신숙주), 과거시험에도 연연하지 말며(이건명), 그저 책을 벗하며(송규렴), 담박하게(안정복) 살라 합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누려 재앙을 입었으니 너희는 나를 경계 삼아 겸손하고 또 겸손하라(김수항) 합니다.

다들 글깨나 읽었던 선비였지만 유언이나 가훈에는 멋부림이 없습니다. 고답하고 싱겁습니다. 큰 가름침일수록 오히려 멋이 없나 봅니다. 쉬이 따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절실합니다. 어렸을 때 읽었다면 누린내 풍기는 잔소리로 치부했겠지만 조금 나이 들어 읽으니 그런 마음 느껴집니다.

말 많아 좋은 일은 없습니다. 아비 된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압니다. 특히 높은 지위에까지 올랐으나 우러러 받들던 임금에게 사사되었던 사람에게야 오죽했겠습니까. 남은 시간이 짧아 말을 줄인다고 했지만, 그 말줄임 또한 큰 가르침이었을 것입니다. 서른 한 편의 가르침은, 그래서 비록 짧고 멋은 없지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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