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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7-12-20 05:09:41, Hit : 9955, Vote : 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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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무한경쟁사회, 피곤하지 않게 사는 방법
제17대 대통령을 뽑는 투표를 일찌감치 마치고, 최근 계속된 술로 찌든 육체를 다스리기 위해 오전 내내 누워 있었습니다. 딸이 옆에서 말을 시키면 잠깐 깨었다가 다시 자기를 반복하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완전히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몸이 개운하여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읽었습니다.

구본형의 <사람에게서 구하라>를 읽다가 ‘손빈의 아궁이’ 이야기가 다시금 가슴에 와 닿아 <사기열전>을 보게 되었고, 그러다가 나카지마 아츠시의 <역사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 시바 료타로의 <미야모토 무사시>, 피터 드러커의 <단절의 시대> 등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물듯 책을 펼쳤습니다. 다 읽은 책을 이렇게 가끔 들춰보는 것도 휴일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느낀 바가 있어 몇 자 적어봅니다.

손빈의 아궁이와 제갈공명의 아궁이1)

사마천의 《사기》 <손자열전>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손자는 《손자병법》을 지은 손무를 말합니다. 손빈은 손자의 후손으로 손자가 죽고 백여년 후에 태어났습니다. 손빈은 방연과 함께 병법을 공부하였는데, 방연은 스스로 손빈의 실력에 미치지 못한다 생각하여 그를 모함하여 죄를 씌웁니다. 손빈은 억울하게 두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고 제나라로 도망갑니다. 손빈이 전기(田忌) 장군의 빈객으로 있을 때 방연과 한바탕 전투를 하게 됩니다. 손빈은 전기 장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위나라 병사는 원래 사납고 용맹하여 제나라 군사를 경멸하여 겁쟁이라고 부릅니다.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그 형세를 이용하여 유리하게 이끄는 것입니다. 제나라 군사가 위나라 땅에 들어가면 10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고 그 다음날에는 5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고 또 그 다음날에는 3만 개를 만들게 하십시오.”

전기 장군이 이를 그대로 따라하니, 위나라 방연이 보기에는 제나라 병사가 군대를 이탈해 도망간 줄 알았습니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퇴각할 때마다 아궁이 수가 줄어들었으니까요. 방연이 방심하여 마음 놓고 추격하자 손빈은 복병을 숨겨 놓았다가 위나라 군대를 섬멸했습니다.

수백년 후에 촉나라의 제갈공명과 위나라의 사마중달이 싸울 때 이와 비슷한 예가 있었습니다. 유비가 죽고 제갈공명이 감동적인 <출사표>를 쓰고 중국 땅의 중앙으로 진출합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 퇴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마중달은 제갈공명이 퇴각할 때 섬멸하려 했습니다. 이 때 공명은 물러나면서 아궁이 수를 늘리는 방법을 썼습니다. 누군가 병법을 아는 사람이 이렇게 물었을 겁니다.

“옛날 손빈은 위나라 방연을 맞아 퇴각할 때 아궁이 수를 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도리어 아궁이 수를 늘리라고 하는 겁니까?”

그러자 공명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마중달은 군사를 잘 부리는 사람이다. 우리가 물러나면 반드시 공격하겠지만 복병이 있을까 의심스러워 아궁이 수를 셀 것이다. 그런데 아궁이 수가 늘어나면 우리가 정말 물러난 건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사마중달은 아궁이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이 괴이하여 뒤쫓지 못했다고 합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역사로부터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옛이야기 자체는 현재를 살아가는 데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순전히 개인의 통찰력에 달려 있습니다. 제갈공명에게 아궁이의 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손빈은 방연이 제나라 군사를 얕잡아보는 것을 이용하여 아궁이 수를 줄이면서 퇴각했습니다. 제갈공명은 사마중달이 복병을 두려워했던 점을 이용하여 아궁이 수를 도리어 늘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통찰력을 우리는 지혜라 부릅니다. 지혜는 내면화된 지식입니다.  

50년 내내 싸워라?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단절의 시대(The Age of Discontinuity)》에서 ‘지식사회’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현대를 지식사회라 규정하는 것에 이의를 달지 않습니다. 지금 평균 수명을 보았을 때 약 50년 동안 일해야 합니다. 이 긴 시간을 일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지식 습득이 필요합니다. 생산직이라 하여 다를 바 없습니다. 새로운 지식의 습득 없이는 50년이나 되는 긴 근로 생활을 지탱할 수 없습니다. 정규 교육이든 개인적 학습이든 옛날에 비해 갈수록 교육을 받는 햇수가 늘어나는 까닭을 피터 드러커는 50년이나 되는 긴 근로 생활2)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지식사회이기 이전에 현대 자본주의는 경쟁사회입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이겨야만 하는 약육강식의 시대인지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처절합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끊임없이 이겨야 한다는 것, 늘 나아지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를 숨 막히게 합니다. 하루의 출발이 숨 막히니 늘 피로할 수밖에 없습니다. 끝없는 경쟁은 정신을 고갈시켜 육체를 피로하게 만듭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만성피로 상태입니다. 50년이나 되는 긴 노동 시간, 끝없는 경쟁, 이 피곤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좀 덜 피곤한 방법이 어디 없을까요?  

남과 싸우지 말고 스스로를 수양하라!

역사는 그 답을 이미 오래 전부터 일러주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그 누구보다 평생을 열정적으로 살았던 공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3)
저는 공자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의 성인군자 투의 말 때문이 아니라 삶이 열정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좋아합니다. 공자의 말마따나 지금 필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즐김입니다. 50년을 내내 싸워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지칩니다. 대신 그 긴 시간이 스스로를 갈고 닦는 수양의 과정이라면 충분히 살아갈 만합니다. 싸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갈고 닦는 수양을 하면서 보다 큰 즐거움을 얻는 과정이라면 말입니다.

일본 전국시대 전설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는 젊은 날 60여 차례 결투에서 한 번도 져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이 서른 이후에는 남과 싸우는 대신 자신을 수양하여 《오륜서》라는 훌륭한 병법서를 남겼습니다. 중국 조나라 때 천하의 명궁 기창(紀昌)은 스승을 뛰어넘기 위해 스승을 죽이려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남을 이기겠다는 경쟁에서 벗어나 활도 화살도 필요 없는 불사지사(不射之射)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스스로 아둔하다고 생각한 조선의 김득신은 <백이전> 11만 3천 번을 비롯해 1만 번 이상 읽은 글이 36편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당대에 시인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스스로 지은 묘비명은 이렇습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따름이다.”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 명궁 기창, 시인 김득신, 그 재주가 각기 다르고 가고자 하는 길도 달랐지만 스스로를 갈고 닦아 이름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공자는 일흔, 미야모토 무사시는 예순, 김득신은 여든 넘게까지 살았습니다. 당시 평균 수명으로 보았을 때 천수를 누렸습니다. (기창은 전설의 인물이라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닦아 장수하고, 이룬 바가 있어 이름까지 얻었으니 이보다 더 알찬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 각주
1) 이 두 이야기를 따로따로 알고 있다가 구본형의 <사람에게서 구하라>를 보면서 연결하여 읽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2) 국립국어원 표준대백과사전의 ‘근로’ 및 ‘노동’의 정의를 따르면, 일을 하는 행위만을 지칭할 때 ‘노동’이라 번역해야 마땅하지만 원 번역자(이재규 교수)의 뜻을 존중하여 ‘근로’라고 표기하였습니다.
3) 이미 다 아시겠지만 원문은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입니다. 논어의 <옹야6-18>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오관수
병목님,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죠?
실은 매일 뵌거 같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요즘 실로 많이 느끼고 고민했던 내용의 글을 읽게되어,
내심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겟습니다.
남을 밟고 일어서야 이기고 살아남는 것은 아니니까요.
얼마 남지 않은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메리크리스마스 먼저 인사 드립니다.
또 뵐께요~
 2007/12/21 10:23:30   

손병목
예! 정말 오랜만입니다~
오관수님 말씀대로, 이 세상에 태어나 오직 한번 뿐인, 오로지 나만의 삶인데, 남과 비교하고 비교 당하는 것은 참 재미 없습니다.
올해보다 더 나은 내년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2007/12/24 07: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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