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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8-01-14 05:30:24, Hit : 8475, Vote :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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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나옵니다. 회수의 남쪽에 있는 귤나무를 회수의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귤화위지(橘化爲枳)도 같은 말입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귤나무가 탱자나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똑같은 것이라도 그 성질이 달라지는 것처럼 인간도 주위의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 말이 꼭 어울리는 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 입시입니다. 미국의 SAT가 한국에 오면 과외를 동반한 수능이 되고,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독일의 아비투어도 역시 한국에 오면 과외를 동반한 논술고사가 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우리나라에만 들어오면 사교육비 상승을 부추기는 괴현상이 벌어집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제   목 :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
   지은이 : 조기숙
   펴낸곳 : 지식공작소 / 2007.11.30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12,000원)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의 저자 조기숙 교수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바로 학벌주의 때문이라고. 학벌주의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대학의 학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제도를 들여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굳건히 지키려는 서울대를 포함한 소위 명문대들의 책임 방기, 책임 떠넘기기가 극에 달한 이 현실을 개탄합니다.

"10여 년 교육 평준화 정책 탓, 국가경쟁력 중·인도보다 낮아"

2007.8.28 <중앙일보> 1면 머릿기사 제목입니다. 뭐, 이뿐이 아닙니다. 다수의 언론에서 우리 교육문제의 원인을 평준화와 3불 정책에 두고 있습니다. 평준화가 하향 평준화를 가져왔으며, 수월성 교육을 가로막아 국가경쟁력이 하락했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그 해결책은 평등주의의 폐지로 요약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평준화 폐지, 3불 정책 폐지, 자율(=입시 부활)과 경쟁의 촉구 등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제가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습니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07년 세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2006년에 비해 12단계나 상승한 11위로 나타났습니다(링크). 유래 없이 급상승했습니다. 작년 12월 조선일보를 보면 WEF나 IMD(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에서 실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가 어떠한 기준으로 평가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국가의 발전 단계에 따라 평가기준이 달라집니다. 국가의 발전 단계는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1만7000달러를 초과하는 제3단계 국가로 승격되면서 올해 순위가 급등하게 되었습니다. 3단계에서는 기업혁신과 성숙도 순위가 큰 역할을 하는데 이 부분의 점수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국가경쟁력은 중등교육과 별 연관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중고등 학생의 학력이 그렇게 형편 없을까요? 이것도 직접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습니다. 학업성취도를 나타내는 지표는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가 가장 객관적일 것 같습니다. OECD 학업성취도 비교평가인 PISA 결과, 2006년 기준으로, 읽기 능력은 OECD 국가 중 1위, 수학은 1~2위, 과학은 5~9위로 나왔습니다(링크). OECD 회원국 중에서도 아주 높은 수치입니다. 단, 과학에서만큼은 2003년보다 하락한 수치가 나왔는데 여기에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과학 수치만 가지고 우리나라 학업능력이 떨어진다고 분석한 신문이 있네요(링크). 좀 어이가 없습니다. SBS에서 2005년 9월 15일에 방영한 <미래한국 리포트> "한국의 마지막 선택, 교육" 편에서도 우리나라 학생의 학업능력은 상향 평준화되었다고 결론지었습니다(링크).

이것으로 평준화와 중등학업능력 저하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통계 수치는 오히려 그 반대였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학의 경쟁력입니다. 가끔 대학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지 못해서 경쟁력에 뒤처진다고 합니다. 그 말이 근거가 없음은 위의 통계를 보셔셔 아셨을 것입니다. 사실 대학경쟁력과 가장 관계가 깊은 변수는 교수의 연구업적입니다. 그 중에서도 교수의 노벨상 혹은 주요 수상 경력이 가장 큰 변수입니다. 학교의 재정투자, 교수 대 학생 비율, 시설, 장학금 지급 등이 주요한 지표입니다. 학생과 관련된 유일한 지표라면 졸업생의 사회 진출과 노벨상 수상 경력 정도입니다. 입학 시 성적이 아니라 졸업생의 사회진출 현황만이 대학경쟁력에 반영됩니다. 그런데도 대학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고등학교 때 제대로 못배웠기 때문이라고요?

3불 정책에 대해 저는 할 말이 참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3불 정책이야말로 교육 선진국의 정책과 흡사합니다.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대학의 본고사는 없습니다. PISA에서 늘상 1위를 차지하는 핀란드는 어떠한 언론에서도 극찬하여 본받고 싶어하는 나라입니다. 역시 본고사도 없고, 심지어 고등학생들의 경쟁도 규제합니다. 한 모둠에 속한 학생들은 전체가 진도를 이해해야 다음 진도로 나갑니다. 앞서 나가는 학생은 뒤처지는 학생을 가르치고 도움으로써 함께 나가도록 합니다. 우리 현실에서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그림입니다. 과거 서울대의 국제경쟁력이 형편 없이 낮았던 이유는 서울대가 국립대라는 특수 지위를 이용해 우수한 학생들을 독점했기 때문입니다. 잘 가르치지 않아도 사회 최고의 엘리트 자리를 차지하니 우수한 졸업생 배출을 위해 경쟁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가장 치열한 경쟁은 경쟁자들의 초기 조건이 비슷할 때 생깁니다. 성적에 따라 대학을 한 줄로 세우면 경쟁은 해보나 마나입니다.

학생의 평가는 가르친 사람이 해야 합니다. 고등학생은 고등학교 교사가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공교육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고등학교 교사는 자칫 밥그릇 싸움이나 지나친 이기주의처럼 비치는 투쟁방식에서 벗어나 제일 먼저 학생 평가권을 대학에서 돌려받아야 합니다. 가르친 사람이 평가하고, 대학은 그 평가를 신뢰해야 합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대학도 경쟁하고 제대로 가르쳐서, 입학성적순이 아니라 우수한 학생의 배출을 통해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대학도 살리고 중고등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미국의 제도에 대해 우리는 참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SAT를 모델로 하여 수능이라는 껍데기만 들여왔지 그 철학은 놔두고 왔습니다. 그러니 귤이 탱자가 될 수밖에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은 15세에 혼자 미적분을 터득한 천재입니다만 컬럼비아 대학에 지원했다가 떨어졌습니다. 그가 사는 뉴욕은 유대인이 많이 사는 곳이었고, 유대인 중 우수한 학생이 많아 떨어졌습니다. 물론 성적순으로 했으면 붙었겠지만, 지역 할당, 소외 계층 할당 등의 할당제로 인해 그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역차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곳이 또한 미국입니다. 그러한 교육의 공공성 개념을 떼놓고 SAT의 껍데기만 우리나라에 가져왔으니, 그것이 우리의 학벌주의와 결합해 기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말을 하자니 끝이 없습니다. 교육에 관해 이 땅의 모든 학부모는 할 말이 많습니다. 너무 많아 속이 터질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한 아이를 둔 학부모로서 현재의 대한민국 교육 체제에 아이를 맡기기가 참 고민됩니다. 지금까지 해결방법은 두 가지 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살아남느냐, 아니면 외국으로 떠나느냐. 이것이 전부입니다. 우리 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생각은 참 무모해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3의 대안을 시도하는 조기숙 교수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에서 조기숙 교수는, 김영삼 정부 시절의 5.31 교육개혁안을 설명하고 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분석합니다. 수월성 교육으로 영재를 키우자, 평준화를 깨야 수월성 교육이 가능하다, 공교육이 무너져서 사교육에 의지한다는 등 일반적인 오해와 그 이면의 진실을 밝힙니다.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 교육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제3의 대안을 찾기를 시도합니다.

신천
참으로 송구스럽게도 나는 아들교육에 돈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흔한 과외한번 시켜보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맘껏 뛰어 놀게 하였으며 중학교를 졸업하자 먼 시골인 거창에 보내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그러더니 원광대 장학생으로 2년을 마쳤고 스물 여섯인 지금 서울의 한양대로 옮겨 3학년을 마쳤습니다. 대학에 학비를 댄 적이 없네요. 맘껏 뛰어 놀게 하자. 다만 책을 많이 읽게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책을 많이 보자. 그게 제 생각이었지요. 저는 교육에 성공했다고 스스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주위의 어린 학생들, 조카들을 보면 정말 너무 딱합니다. 가장 소중하고 재미있어야 할 어린 시절이 공부로 주눅이 들어 어깨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아무튼 우리나라 교육을 생각하면 제일 재미가 없어요... 우수한 학생 뽑아다가 바보 만드는 교육이 지금의 일류대이고요. 대학교육의 질이 마치 입시에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거짓을 말하는 뻔뻔함에도 놀라울 뿐이지요.  2008/01/14 08:52:41    

손병목
네, 신천님의 교육 방식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어렸을 때 자유롭게 놀고 사고하며, 정말 중요한 공부는 대학에 가서 해야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공부는 평생 이어져야 하구요. 몇몇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라 모두가 그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이 아니라 몇 십 년 후라도 꼭 그런 교육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8/01/14 1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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