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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병목 (2009-08-21 16:59:56, Hit : 5448, Vote :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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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에서 시작하는 아키타의 기적
이 글은 김영사에서 출간한 <기적의 아키타 공부법(아베 노보루 著)>의 머리말로 게재되었다.


손병목 | 학부모 포털 부모2.0 대표 www.bumo2.com

우리의 교육 현실과 가장 비슷한 나라 일본에서 조용한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 나는 적잖이 흥분했다. 가정에서의 생활습관이, 가장 기본적인 공부습관이야말로 공부 잘하는 근본 비결이라는 것은 나의 굳은 신념이었다. 그것이, 한두 명의 성공사례가 아니라 지역에 속한 거의 모든 학생들이 경험한 대규모 성공사례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고, 학부모 강연 때마다 이 사실을 언급했다.

아키타의 대규모 성공 사례를, 아키타의 교육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베 노보루 아키타대학 교수가 책으로 펴냈다. 나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고, 또 추천한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아키타의 사례가 우리 교육 현실에 언제쯤에야 온전히 적용될지 요원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큰 틀의 교육정책이 바뀌기를 기다리기보다 지금 당장이라도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시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족이지만 몇 자 거든다.

시골 학교의 기적, 상식을 바꾸다

초등학생 전국학력평가 결과, 변변한 사교육 기관 하나 없는 강원도 산골 마을이 강남과 목동, 분당의 학력을 크게 앞섰다. 그것도 2년 연속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 교육계는 발칵 뒤집힐 것이다. 일본에서 실제 이런 이변이 생겼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에 해당하는 아키타현의 시골 초등학생이 일본 전국학력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모든 교과에서 1위를 했다. 43년 전에는 꼴지에 가까웠던 43등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기적이라 불렀다. 우리나라도 10년 만에 전국단위 일제고사를 실시했지만, 아쉽게도 기적은 없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정책 방향은 교육의 질적 수준 향상보다 사교육비 경감에 더 민감하다. 오죽했으면 사교육 망국론이 나왔겠는가? 사교육 문제에 관한한 일본도 우리 못지않다. 소득수준에 따라 사교육비 지출규모가 10배 이상 차이난다. 우리나라의 강남, 목동에 해당하는 도쿄(東京) 미나토(港)구, 시부야(澁谷)구 등 부촌은 유치원 때부터 대입을 염두에 둔 교육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3~4학년부터는 주쿠(塾)라는 이름의 학원에 다니고, 졸업생의 90% 이상이 사립학교에 진학한다. 참 많은 점이 우리와 닮아있다. 모두들 남들보다 먼저 가기 위해 선행을 하고, 선행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아키타현의 시골 학교가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 학교보다 월등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은 뜻밖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을 기적이라 하는데, 기적이 2년 동안 되풀이되었다면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바꿔야 할 때다.

기적의 비밀, 공부는 습관이다

책 제목에서 이미 드러나듯 아키타 기적의 비밀은 멀리 있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여 아무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습관’이 그 비밀이다. 아키타 아이들은 수업에 적극적이며 수업태도가 바르다. 학원에 거의 다니지 않지만 가정학습을 잘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집중력을 키우고, 독서를 통해 공부의 기초 체력을 키운다.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하며, 의견을 발표하고 교환하면서 활용능력을 키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 데는 가정과 지역, 학교의 연계에 있다. 이상이 저자의 분석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풀어 쓰는 것이 민망할 정도다. 뭔가 허전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전부다. 사람들은 의심을 할 것이다. 이런 당연한 것들 말고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았겠냐고. 우리가 깨야할 것은 바로 이러한 ‘상식’이다. 공부는 누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다. 공부의 본질은 스스로 하는 데 있다.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까 고민하는 것은 반쪽짜리 고민이다. 교육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스스로 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 있다. 학생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 -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것, 이것은 습관의 다른 이름이다.

습관의 힘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아키타의 아이들처럼 수업에 적극적이고 수업태도가 바르며, 복습을 잘하고,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습관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현실은 암담하다. 수업 시간에 기죽지 말라고 학원에서 미리 공부시켜 보내도 수업태도는 산만하다. 학원 수업과 과제에 밀려 복습할 시간은 없다. 책을 읽고 뭘 물어보면 꿀 먹은 벙어리다.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몇 년을 공부해도 공부습관이 잡히지 않는다. 공부습관을 잡는 건 왜 이렇게 힘들까? 아키타를 들여다보면 답이 보인다.

적극적인 수업태도의 비밀

우리나라 동네 학원 중 열의 아홉은 ‘선행학원’이다. 정식 명칭은 보습학원이지만 시험 때를 제외하고는 선행학습이 거의 전부다. 학원이 경쟁적으로 선행을 하는 까닭은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선행은 말 그대로 앞서 행하는 것이고, 선행 학습은 남들보다 앞서 배우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고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선행이 곧 실력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러나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많은 아이들이 선행을 했음에도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과연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한 신문사에서 전국 상위 0.1%의 최상위 학생들의 학습 방법을 연구하여 시리즈로 다룬 적이 있는데, 그 학생들의 학습법은 매우 평범하였다.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하고, 수업에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학원에 의존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일수록 선생님 탓을 많이 한다. 영어 시간에 수학을 공부하고, 수학 시간에 영어를 공부한다. 반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일수록 수업에 몰입한다. 지금이 아니면 따로 배울 시간이 없다는 생각으로 수업에 임한다. 시간 관리가 철저하다. 이런 학생들만이 고등학교 때 최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 아이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습관은, 이러한 수업태도이다. 섣부른 선행은 수업태도를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아키타의 학교와 대도시의 학교 수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수업태도였다. 저자가 제1장 ‘왜 아키타의 학력은 전국 최고일까?’에서 ‘학급붕괴, 수업방해가 거의 없다’, ‘긍정적으로 수업에 참가한다’는 것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당장의 지식량보다 수업태도가 훨씬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아키타의 학교 수업이 산만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경쟁적인 선행이 없기 때문이다. 대도시와는 달리 학교 수업 외에 달리 학력을 키울 장소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수업태도를 진지하게 만들었다.

송나라 어느 농부가 제 밭의 싹이 다른 밭의 싹보다 느리게 자라는 걸 속상해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싹이 자라는 것을 돕기 위해 싹을 조금씩 땅위로 잡아 올려주었다. 하루 종일 싹이 자라는 것을 돕느라 힘들긴 했지만 뿌듯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그 싹은 다 말라 죽어있었다. <맹자>에 나오는 고사인데, 여기서 생긴 말이 ‘조장(助長)’이다. 도와서 자라게 한다는 뜻이지만, 매우 부정적인 말로 통용된다. 농부에게 필요한 것은 싹이 빨리 자라도록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가 빨리 배우도록 잡아당기는 선행학습은 멀쩡한 아이조차 말라 죽인다. 상식이 되어버린 선행학습이 아이의 공부 능력을 퇴화시키고, 학교 교육을 비정상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선행학습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악이 되었다.

복습, 공부의 완성

많은 부모들이 뒤늦게야 선행의 무익함을 깨닫는다. 먼저 배워봐야 나중에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그때 가서야 비로소 안다. 지식의 양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 입학 전 고등학교 3학년 때 풀었던 수학 문제집의 수가 평균 2.8권에 지나지 않았다. 1년 동안 3권도 풀지 않고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완전히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래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최상위 능력은 거기서 비롯되었다. 저자가 수업태도 다음으로 ‘복습’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키타 아이들이 복습하는 비율은 전국 평균의 두 배에 가깝다. 아키타에서는 학원에 다니는 아이의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다. 결국 복습은 거의 집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아키타현 중에서도 가장 성적이 높았던 히가시나루세 마을은 겨울이면 마을 전체가 온통 눈으로 덮이는 산골이다. 학원 자체가 없다. 학교는 가정학습 매뉴얼을 만들어 가정에서 지도해야할 공부습관을 체계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복습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내가 학부모 강연 때 복습의 중요성을 아시는 분은 손을 들라고 하면 거의 모두가 손을 든다. 반면 아이들에게 매일 복습을 시키고 있냐고 물으면 거의 손을 들지 않는다. 학원에 다니고 학원 숙제를 하느라 예습과 복습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요즘 학부모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 중요한 줄 알지만 시간이 없어 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다. 뛰어난 도공은 흠이 있는 도자기를 깨뜨리지만 예술적 안목이 없는 도공은 명품만 골라서 깨뜨린다. 마찬가지로 ‘엄마표’에 성공한 학부모들은 정말 중요한 것을 가려 실천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들은 정말 중요한 것만 골라 버린다. 선행을 취하고 복습을 버리는 우를 범한다.
두뇌의 기본 속성은 망각이다. 어지간히 중요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중요성의 기준 또한 나의 기준과는 많이 다르다. 수업내용을 기억하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두뇌는 며칠 만에 거의 모든 것을 버린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버리는 것을 쓰레기라 한다. 두뇌는 대부분의 기억을 쓰레기로 취급한다. 방법은 있다. 기억하고 싶으면 자주 사용하면 된다.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버리지 않듯 재사용되는 기억을, 두뇌는 중요한 것이라 여긴다. 두뇌 저장 기간이 만료되어 곧 버려야할 기억을 다시 사용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복습이라 부른다.

초등학교 때 복습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한 아이들은 중학교에 가서도 대개 복습할 줄을 모른다. 오로지 학교수업, 학원수업, 학교숙제, 학원숙제에만 익숙하다. 스스로 공부한다는 것은 배운 것을 익히는 과정이 핵심이다. 그런데 ‘듣는’ 수업과 ‘시켜서 하는’ 과제에만 익숙하다보니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아이들도 깨닫는다. 진정한 공부 실력은 밤 12시까지 학원에 있다고 해서 커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러면서도 정작 학원을 끊지 못한다. 혼자 공부하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고, 내가 학원을 끊으면 다른 아이들은 더 많이 공부하는 것 같은 불안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무언가를 끊을 때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중독이라 부른다. 일반 고등학생이 학원에 가는 이유 중 단연 1위(49.1%)는 ‘불안감’이었다. 경쟁적인 선행에 익숙하고 기본적인 복습 습관을 익히지 못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상담을 하다보면 가끔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부모가 있다. 복습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습관을 애초에 들이지 못한 까닭이다. 정말 좋은 자동차인데 달리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비싸게 준 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속만 더 상하고,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못한다면 엄마 속만 뒤집어진다. 이제 더 이상 ‘머리는 좋은데……’라는 말을 말자. 그 시간에 아이와 함께 하루 10분이라도 복습을 하자, 아키타의 아이들처럼 말이다.

적극적인 발표와 의견 교환, 안 되는 이유는 가정에 있다

아키타의 선생님은 무조건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양한 의견을 말하고 듣는 과정이 곧 수업임을 안다. 저자가 아키타의 우수한 학력의 요인 중 수업태도와 복습의 중요성 다음으로 언급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의견을 교환한다’는 것이다.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 답을 적지 않고 내는 무해답 비율이 낮은 것 역시 이러한 적극적 의견교환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더라도 지극히 당연한 분석이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남의 의견을 듣는 능력이 우수한 아이들이 공부 역시 잘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공부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왜 아키타의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의견을 교환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우물쭈물 말을 얼버무리고 마는가?

공부 좀 제대로 시킨다는 집에서 초등학교 논술 교육은 상식처럼 되었다. 많이 읽고 토론하고 쓰는 훈련을 일찌감치 시키자는 의도다. 우리나라 동화책 맨 뒷장은 한결같이 ‘아이와 함께 토론하기’ 코너가 실려 있다. 외서를 번역해 출간할 때도 원문에 없는 토론 코너가 추가된다.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고 말하는 것의 중요성은 우리 역시 이처럼 잘 알고 있다. 아이가 책을 읽고 나면 엄마는 물어본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이 영 신통찮다.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으니 편하게 얘기하라고 해도 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다. 엄마의 질문 자체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아키타의 아이들은 토론과 의견 교환 수업을 통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선생님이 언제나 유일한 정답을 갖고서 그것을 주입하는 자세로는 아이들이 실수를 두려워하여 자신의 의견을 쉽게 말하지 않게 되니 주의하라 당부한다. 이것이 어디 학교 선생님에게만 해당되는 조건이겠는가? 남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는 습관은, 실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말하기의 기본은 경청이다. 부모가 아이의 말을 경청하지 않을 때 아이 또한 경청하는 습관을 배울 길이 없다. 경청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듣는 과정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이거 했으면 좋겠다’고 완곡하게 말하면 ‘안 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많다. 단답식으로 짧게 묻지 않고 부연설명이 조금만 길어져도 핵심을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아이들이 많다. 일선 교사의 증언이다. 이런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할 가능성은 낮다.

아이가 남의 말을 경청하지 못하고, 남의 의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는 부모가 아이의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하지 못한 탓이 제일 크다. 특히 학습지도 과정에서 아이에게 질문하는 경우는 대개 아이가 문제를 잘못 이해했거나 틀렸을 때다. 아이가 열심히 문제를 풀다가도 엄마가 “그거 맞니?”라고 물으면 바로 답을 지워버린다. 엄마의 질문은 늘 ‘틀림’을 전제로 하고, ‘정답’을 요구한다. 엄마는 자유롭게 말하라고 하지만 속뜻이 그것이 아님을 아이는 자연스레 터득한다. 정답을 요구하면 토론이나 의견교환을 싫어하게 된다는 저자의 말은 학교 선생님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

토론 능력을 키운다는 핑계로 아이와 책을 읽고 난 후 제발 질문하지 말자. 책을 덮고 질문하는 것 역시 아이는 평가라 생각한다. 아이는 정답을 요구하는 줄 안다. 궁금하겠지만 우선은 참자. 대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이야기를 듬뿍 하자. 아키타의 어린이는 독서를 좋아하고, 독서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 ‘책 읽어주기’를 실천하자고 저자는 말한다. ‘책 읽어주기’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저자는 초중학생은 물론 고등학생에게도 책 읽어주는 것이 유용하다고 말한다. 나도 학부모 강연 때마다 가장 강조하는 것이 ‘책 읽어주기’이다. 최소한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매일 일정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책을 읽지 못해 읽어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매일 책이 좋아지는 광고방송이나 마찬가지다. 독서지도의 목적은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데 있다.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방법 중에 ‘책 읽어주기’만한 것이 없다. 다만 읽어줄 때 유의할 것은, 읽고 난 후 평가하듯 묻지 말고, 읽어주는 과정에서 최대한 이야기를 하는 요령을 익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엄마가 먼저 풍부한 감정 표현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자꾸 엉뚱한 짓을 반복하는 장면이 나오면 “아, 주인공, 참 답답하네. 이러니까 선생님께 혼나지.” “또 그러네. 이번엔 선생님께서 더 크게 혼내실 텐데.” “어, 또 그러네. 참 답답해라. 너도 답답하지 않니?” 이렇게 책을 읽는 동안 엄마의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면서 동의를 구하듯 가볍게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자. 이 정도 질문에 쉽게 반응을 하면, 자연스럽게 “네 생각은 어때?”하고 묻는 단계로 발전할 수 있다. 물론 아이가 선뜻 대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는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엄마 느낌만 말하면 된다. 아이는 비록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잠깐이나마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이렇게 책을 읽으며 부담 없이 이야기하는 사이, 엄마와 아이 사이의 대화의 장벽이 사라진다. 질문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자연스레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자신감이 생긴다. 진정한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남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것을, 부모는 보여줌으로써 가르치는 것이다.

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아이가 틀린 문제가 나오면 ‘왜 틀렸니?’라고 묻지 말자. 이때 ‘왜?’라는 말은 생각을 자극하기보다는 오히려 틀리지 말아야 할 것을 틀렸다는 죄책감을 들게 만든다. 엄마와 함께 문제를 풀다보면 늘 맞은 것보다 틀린 것에 집착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의 공부경험은 부정적으로 흘러간다. ‘도대체 몇 번을 가르쳐줘야 되겠니?’, ‘아직도 모르겠어?’, 이런 말은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들 뿐이다. 교육 효과는 0에 가깝다. 대신에 아이가 틀린 부분을 발견하면, ‘아! 바로 이거구나, 이 부분이 약했구나.’라는 말로 바꿔보자. 아이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약한 부분을 발견하여 그것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이 부분이 약했구나. 지금부터 해결해볼까? 엄마가 도와줄게.’ 이런 말을 통해 엄마는 평가관이 아니라 아이의 조력자임을 평소 학습지도를 통해 느끼도록 하자. 그럴 때 아이는 엄마의 질문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편하게 대답할 수 있다. 틀린 문제를 엄마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비슷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때, 아이의 내면에는 문제해결의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활용형 학력이 요구되는 시대에 실수를 창피해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실수를 창피하게 느끼지 않은 아이로 키우기 위해 가정에서 해야 할 역할은 바로 이것이다.

밥상머리에서 시작하는 아키타의 기적

이 책을 읽다보면 학습지도와는 언뜻 무관하게 보이는 생활습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쳤고, 가정에서 어떻게 공부를 가르쳤느냐는 문제보다 더 크게 다루는 것이 식사 문제, 인사와 예절과 같은 생활습관이다.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한 독자, 특히 아이의 공부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학부모라면 제2장 ‘아이의 학력은 식탁에서부터’라는 글을 읽는 순간 저자의 분석을 시답잖게 여길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라는 말이 지나치게 한가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여기에 진짜 공부의 비밀이 숨어 있다.

미국에서 80년대 생활수준이 비슷한 서민층을 대상으로 추적조사를 했다. 그 결과 가족식사를 한 가정의 아이들은 학교성적과 사회에서의 성취도가 남달랐다고 한다. 2007년 조사(The Importance of Family Dinners. CASA)에서도 가족식사를 하는 가족과 그렇지 않은 가족의 아이들의 성적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함께하는 식사는 정서적 유대감을 높이고 가족 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방법인데, 정서적 유대감과 의사소통은 효과적인 자녀교육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한 아이들은 매튜(Matthew) 효과를 얻는다고 하버드대학교 캐서린 스노우 교수는 조언한다. 매튜 효과란 마테오 효과라고도 하며,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학습에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란, 많은 지식을 가진 아이는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점점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아이들은 식사 중 어른들과의 자연스런 대화를 통해 훨씬 더 많은 어휘를 습득하게 되고, 이것이 독서능력과 직결되어 학습능력을 높인다고 한다. 유아나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귀담아 들어야할 조언이다. 가족식사는 자녀가 어릴 때에만 지켜야할 원칙이 아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성공한 CEO의 상당수가  자녀들이 어른이 된 뒤에도 가족식사 원칙을 고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교육은 밥상머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다.

저자는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개별식사’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 개별식사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부 문제를 말하면서 가족식사 문제를 이처럼 강조한 예는 드물다.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조언이다. 그러나 최근 방영된 SBS 다큐멘터리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은 저자의 조언이 결코 고리탑탑한 노학자의 한가한 얘기가 아님을 방증했다.

아키타의 조용한 기적, 그 기적의 비밀은 결코 먼 데 있지 않았다. 늘 거기에 있었으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개천의 잠룡(潛龍)이 비룡(飛龍)이 되는 비책은, 다름 아닌 평범한 생활습관에 있었다. 그래서 바다 건너 아키타의 성공은 우리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다. 현명한 부모라면 이 책을 채 다 읽기도 전에 지금 당장 실천할 요소를 발견할 것이다.

큰 교육은 나라에서 관장하지만 작은 교육은 가정에서 책임을 져야한다. 지금까지 수없이 입시제도가 바뀌었지만 공부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공부는 아이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저 그것을 도와줄 뿐이다. 그 역할이 뒤바뀔 때 부모와 자녀는 모두 괴롭다.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키우는 근본적인 방법을 아키타의 부모에게서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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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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