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12,210
홍사중 - 《나의 논어》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나 봅니다(ㅎㅎ 죄송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고전이 점점 재미있어지는 까닭을 찾을 수 없으니까요. 아마 나이가 한살씩 더 먹을수록 고전(古典)의 옛 '고(古)'자가 조금씩 가깝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주 친숙한 단계는 아니고, 고(古)에 대한 '거부감'이 고(古)에 대한 '거부감 없음' 정도로 바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런 류의 책을 손에라도 집지요. 몇 년 전만 같아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테니까요.
제 목 : 나의 논어
지은이 : 홍사중
펴낸곳 : 이다미디어 (초판 출간일 2004.9.1 | 초판 1쇄를 읽음) ₩15,000
요 몇일 동안 홍사중의 《나의 논어》를 읽었습니다. 선배의 칼럼을 보고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마음이 쉽게 동(動)하지는 않는데, 일전에 비록 문고판이기는 하지만 《맹자》와 《순자》를 읽고서 재미를 넘어 신선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어 주저없이 샀습니다.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지하철에서 오며 가며 읽기에는 녹록하지 않았습니다만 책값이 후회되지 않을만큼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홍사중의 글을 신문이 아닌 책으로 본 것은 처음입니다. 신문으로 봐도 직접 내돈 주고 산 적이 없는 <조선일보>에 실린 글이니 거의 접한 적도 없고, 보더라도 처음부터 삐딱한 눈으로 봤던 게 사실입니다. 이 책 한 권으로 인해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예전에 3당 야합을 할 때에도 '역사에 어느 일이나 그것이 일어날만한 까닭이 반드시 있다. 아무리 보수 합당이 불합리하고 엉뚱하게 보여도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고 얘기하면서 그 합당으로 득을 보는 건 결국 국민이라는 논조를 보고 끼워맞추기식 궤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그 이후에 그가 어떤 글을 썼는지 잘은 모르지만 여전히 김대중, 류근일과 함께 조선일보 트로이카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떠나 이 책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홍사중의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홍사중의 글쓰기에서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압권은 단연 제1장 <공자를 말한다>입니다. 성인 공자가 아닌 '인간 공자'에 대해 이토록 실감있게 표현한 글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이런 표현은 책 좀 많이 본 분들이 쓰는 말이지만 딱히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두루 잡기를 익히며 생활을 해나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세속적인 모습들 - 특히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가 없어 안절부절 못하다가 자로로부터 쓴소리를 듣는 장면들을 보면서, 공자에 대해 논어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이 한꺼번에 허물어짐을 느꼈습니다.
2장에서 7장까지는 '지식, 군자와 소인, 처세술, 리더십, 천명과 부귀, 공자 학원과 제자들'이라는 주제로 논어와 여러 고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흔히 "공자 曰 …" 이렇게 시작되는 여느 고전 해석본과는 많이 다릅니다. 저자가 이해하는 공자와 논어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하면서 <논어>를 인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공자와 논어, 나아가 중국 고전에 대한 전반적인 모습을 꿰뚫고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글은 재미있습니다. 어쩌다 길바닥에서 엿들은 것을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남에게 말하는(道聽途說) 얼치기의 허투룬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p.493의 꼭지 제목이 일단식(一簞食) 일표음(一瓢飮)입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교수님은 이 문장을 두고 일단사(一簞食) 일표음(一瓢飮)이라 읽으셨습니다. 이제 시험에는 나오지 않으니(^^)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인지 제게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궁금하네요.
"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현재회야 일단사일표음재누항 인불감기우 회야부개기락 현재회야)
안회라는 사나이는 참으로 어질다. 일단의 밥과 일표의 물로 배를 채우고, 빈빈가의 움막 같은 누추한 집에서 산다. 다른 사람 같으면 못 견딜 터인데 안회는 오히려 그런 생활 속에서도 도를 배우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다. 안회는 참으로 어질도다.
뒷 얘기 : 이런 생활을 계속한 안회는 끝내는 영양 실조에 걸려 41세의 한창 나이에 죽었습니다.
제 목 : 나의 논어
지은이 : 홍사중
펴낸곳 : 이다미디어 (초판 출간일 2004.9.1 | 초판 1쇄를 읽음) ₩15,000
요 몇일 동안 홍사중의 《나의 논어》를 읽었습니다. 선배의 칼럼을 보고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마음이 쉽게 동(動)하지는 않는데, 일전에 비록 문고판이기는 하지만 《맹자》와 《순자》를 읽고서 재미를 넘어 신선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어 주저없이 샀습니다.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지하철에서 오며 가며 읽기에는 녹록하지 않았습니다만 책값이 후회되지 않을만큼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홍사중의 글을 신문이 아닌 책으로 본 것은 처음입니다. 신문으로 봐도 직접 내돈 주고 산 적이 없는 <조선일보>에 실린 글이니 거의 접한 적도 없고, 보더라도 처음부터 삐딱한 눈으로 봤던 게 사실입니다. 이 책 한 권으로 인해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예전에 3당 야합을 할 때에도 '역사에 어느 일이나 그것이 일어날만한 까닭이 반드시 있다. 아무리 보수 합당이 불합리하고 엉뚱하게 보여도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고 얘기하면서 그 합당으로 득을 보는 건 결국 국민이라는 논조를 보고 끼워맞추기식 궤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그 이후에 그가 어떤 글을 썼는지 잘은 모르지만 여전히 김대중, 류근일과 함께 조선일보 트로이카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떠나 이 책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홍사중의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홍사중의 글쓰기에서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압권은 단연 제1장 <공자를 말한다>입니다. 성인 공자가 아닌 '인간 공자'에 대해 이토록 실감있게 표현한 글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이런 표현은 책 좀 많이 본 분들이 쓰는 말이지만 딱히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두루 잡기를 익히며 생활을 해나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세속적인 모습들 - 특히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가 없어 안절부절 못하다가 자로로부터 쓴소리를 듣는 장면들을 보면서, 공자에 대해 논어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이 한꺼번에 허물어짐을 느꼈습니다.
2장에서 7장까지는 '지식, 군자와 소인, 처세술, 리더십, 천명과 부귀, 공자 학원과 제자들'이라는 주제로 논어와 여러 고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흔히 "공자 曰 …" 이렇게 시작되는 여느 고전 해석본과는 많이 다릅니다. 저자가 이해하는 공자와 논어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하면서 <논어>를 인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공자와 논어, 나아가 중국 고전에 대한 전반적인 모습을 꿰뚫고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글은 재미있습니다. 어쩌다 길바닥에서 엿들은 것을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남에게 말하는(道聽途說) 얼치기의 허투룬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p.493의 꼭지 제목이 일단식(一簞食) 일표음(一瓢飮)입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교수님은 이 문장을 두고 일단사(一簞食) 일표음(一瓢飮)이라 읽으셨습니다. 이제 시험에는 나오지 않으니(^^)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인지 제게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궁금하네요.
"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현재회야 일단사일표음재누항 인불감기우 회야부개기락 현재회야)
안회라는 사나이는 참으로 어질다. 일단의 밥과 일표의 물로 배를 채우고, 빈빈가의 움막 같은 누추한 집에서 산다. 다른 사람 같으면 못 견딜 터인데 안회는 오히려 그런 생활 속에서도 도를 배우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다. 안회는 참으로 어질도다.
뒷 얘기 : 이런 생활을 계속한 안회는 끝내는 영양 실조에 걸려 41세의 한창 나이에 죽었습니다.
부록

댓글 3
食 : 먹을 식, 살림식, / 밥 사
여기서는 '밥'이라는 뜻이므로 /사/라고 읽는 것이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공자가 아니고도 그러한 생각은 누구나 조금씩은 다 하는 것이지만 '그냥 그렇군' 하고 마는 것 보다는 확실히 크게 깨닫는 쪽이 먼저 마음을 정하고 자세를 바로잡게 되는 것이겠지요. 나이를 떠나 지식을 떠나 그런 사람들이 인생의 선배가 되는 셈이고요.
암튼 언젠가 깨닫게 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안 좋은 일, 안좋은 사람도 경험이라는 득이 된다치고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해보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건 너무 힘든 일입니다. 저한테는요.
사람들은 다들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정말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볼 줄 아는 마음만 있으면 좋을텐데....
저는 공자가 배고픔 때문에 안회를 오해한 인간적인 마음을 이해하고 곧 진실을 알고 후회하는 마음을 이해합니다. 사람이 후회를 하는 건 자신을 되돌아 보기 때문이고 남을 쉬이 욕하지 않는 건 자신도 저 사람처럼 욕을 듣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오늘은 무조건 화 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인들도 화내고 초조해하는 사람이라는 이 글을 읽고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평안한 밤 되십시오. ^^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월요일 새벽입니다. 마음의 평안을 되찾는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