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embers.net 아카이브 · 2002–2009

손병목의 독서노트

아이디어 바이러스

일주일이 넘게 제 가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생각처럼 쉽게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근래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책인 것 같습니다. 몇 페이지 읽다가 말고, 읽다가 말고... 그렇게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반면 이 책에 대한 인터넷 서평을 보면, 내용이 쉬워 한번에 읽었다, 중학생도 이해할만큼 쉬웠다,는 등 매우 쉽게 읽어볼 수 있는 책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들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 쉬운 내용이 아닌데, 도대체 무엇이 쉽다는 것일까...


   제   목 : 아이디어 바이러스
   원   제 : UNLEASHING THE IDEAVIRUS
   지은이 : 세스 고딘(Seth Godin)
   펴낸곳 : 21세기북스 (초판 출간일 2002.2.25 | 2002.11.20일刊 초판 3쇄를 읽음) ₩10,000

물론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명료합니다.
아이디어나 상품을 마치 '바이러스'와 같이 만들어 유포시킬 때만이 유행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성공적인 아이디어는 마케터와 소비자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소비자와 다른 소비자와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디어가 바이러스가 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아이디어로서의 '가치'가 있어야 하고, 이것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매끄러움'이 있어야하고, 이를 전달할 강력한 스니저(입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가 있어야 하고, 마케터는 초기에 이 바이러스를 적절히 유포할 하이브(대상집단)를 찾아내고, 이 스니저들을 관심있게 관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끼어들기 마케팅(일반적인 무차별 대중에 대한 광고)은 몰락했으며, 소비자끼리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 번져나가는 아이디어(상품)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에 대해서는 동의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품이 도대체 어떤 것들인지,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너무나 미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정작 제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 - 이 아이디어 바이러스를 만들고 유포시키는 방법 - 이것을 도무지 감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책을 쉽게 읽을 수 없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핫메일과 구글, 빈디고(vindigo.com), 이베이 등 몇 가지 주요 사례를 끊임없이 들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성공한 사업에 대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독자인 제가 보기에는 별로 신선하지 못한 내용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다음(한메일)과 네이버, 옥션이 성공한 사례를 들면서, 그 아이디어는 막강했으며 사용자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매끄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어 스스로 증폭하면서 사용자층을 감염시켰다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저자는 아이디어 바이러스에는 8가지 변수가 있다고 합니다.
1. 스니저 2. 하이브 3. 속도 4. 방향 5. 매개체 6. 매끄러움 7. 지속성 8. 증폭

스니저는 오프라 윈프리와 같이 엄청난 전파력을 가진 사람 또는 집단을 말합니다. 스니저가 열 명에게 말하면 거의 열 명이, 백 명에게 말하면 거의 백 명이 그 바이러스에 감염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스니저를 관리하는 것! 아이디어 바이러스의 핵심입니다.
하이브는 '바쁜 사람들이 벌떼처럼 부산하게 활동하는 곳'을 뜻합니다. 즉 일정한 단체를 형성하고 있는 타겟층을 광범위하게 말하는 것으로 친한 친구 모임, 특정 잡지 독자들 또는 무료 입장객 등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규칙과 기준이라도 특정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그룹을 말합니다. 초기에 하이브를 제대로 선택하여 공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속도가 빠르지 않으면 바이러스가 유포되기 전에 경쟁자가 새로운 하이브를 채가고 그 시장에서 '원조'로 군림하게 됩니다.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바이러스는 또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전달되지 않고 한 방향으로만 전달되는데, 이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를 미리 예측해야 합니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위해서는 매개체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스티커 사진이 유행했던 까닭은, 자신이 찍은 스티커 사진을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로 유포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이디어 자체가 스스로 매개체가 될만큼 전염성이 강해야 합니다. 또한 스티커나 핫메일과 같이 편리함, 매킨토시의 아이북과 같이 획기적인 디자인,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누구나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아이디어와 같이 바이러스가 매끄럽게 전파될 수 있는 특징이 있어야 하며, 오랫동안 지속되고 증폭하여 번지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이상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인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저자의 문장을 빌어 정리하자면, "소비자가 마케팅을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소비자를 상대로 한 마케팅은 그만 중단해야 하며, 대신 소비자끼리 서로를 상대로 마케팅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위의 8가지 변수를 모두 이해한다고 해도, 이를 제가 하고 있는 사업에 연관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저자가 "아이디어는 빈 곳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면, 저는 "그 빈 곳이 어디일까?"라고 고민하는 식입니다. 잭 트라우트가 강조하는 '특정한 속성을 먼저 점령'하기 위해 새로운 카테고리를 발견하라는 말 같기도 하고, 흔히 주위에서 말하는 니치(틈새)를 발견하라는 말 같기도 합니다. 나의 사업에 있어, 하이브는 누구이며 스니저는 누구이며, 이 사업 모델이 과연 속도와 매끄러움, 지속성과 증폭이 가능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하였지만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책가방 안에서 책이 뒹굴고, 조금 읽다가 생각하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동안, 새로운 관점에서 사업과 마케팅을 고민하는 시간이 된 건 사실입니다. 대신 뾰족한 답을 낼 수 없어 답답해하고 힘들어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자가 쓴 또 다른 책 《퍼미션 마케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
이 책은 말콤 글래드웰의 《티핑 포인트》와 유사한 내용이 많습니다.
티핑 포인트 또는 티핑(균형이 깨는 순간)이 일어나는 상황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다고 말합니다.
1. 소수의 법칙 - 전염하는 곳에는 소수의 커넥터, 메이븐(지식 축적자)이 있다.
2. 고착성 요소 - 지속적으로 사람의 뇌리에 남을만한 뭔가가 있다.
3. 상황의 힘 - 환경에 의해 사람들의 행동은 결정된다.
여기서 말하는 커넥터와 메이븐은 스니저, 고착성은 아이디어, 상황의 힘은 매끄러움, 방향, 증폭 등의 말로 바꿔 읽으면 《아이디어 바이러스》에서 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거의 유사한 것 같습니다.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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