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embers.net 아카이브 · 2001–2009

손병목의 독서노트

아이는 99% 엄마의 노력으로 완성된다

어제 수능 시험을 치렀습니다.
1교시가 끝나자마자 투신 자살한 학생의 안타까운 소식도 들렸습니다.
수능 시험은 대통령 취임식이나 그 어떤 국경일 행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수험생은 시험장 가는 길에 경찰차나 심지어 119까지 긴급 호출할 수 있습니다. 이날 하루 수험생은 특권 아닌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1년에 딱 한 번 있는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지난 12년을 평가받게 됩니다.

저는 이제 겨우 두 돌 지난 딸아이의 아빠입니다.
한 가정에서 부모로서, 그리고 교육 서비스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교육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사교육의 폐해에 대해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있으며 공교육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서는 더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누구나 다 그러하겠지만, 비록 저에게는 지난 일이니 괜찮으나 자식들마저 이런 교육 환경에 방치해야 하는가하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육아와 자녀 교육, 이것은 부모로서 반평생 이상을 고민해야 하는 업보 중의 업보입니다.

《아이는 99% 엄마의 노력으로 완성된다》는 40년간 미국과 일본에서 교수직을 역임한 장병혜 박사의 교육 '철학'을 담은 책입니다.
그러나 그 철학은 거창한 교육 이론이나 '~ 학습법'이 아닙니다.
제목 그대로 '아이는 엄마하기 나름'이라는 매우 단순한 사실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귀가 솔깃해질만한 그녀(장병혜)의 최대 공적(?)은 세 아이가 딸린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남'의 자식을 애정과 원칙으로 키워내어 모두 하버드와 예일대를 졸업하도록 만든 게 아닐까요.. ^^

엄마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책을 보면서, 역설적이게도 그 엄마(장병혜)를 있게 한 그녀의 아버지의 중요성을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 딸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 곳곳에서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깨우치고 배웠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렇게 배우고 깨달은 원칙들을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매개체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나에게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몸소 보여 주신 분이다."(p.250)

그 외에 인상깊은 구절 몇 개를 옮겨 봅니다.

  1. 간단하게 생각하면 될 일이다. 부모는 거실에 앉아 텔리비전 채널을 돌리면서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한다면, 어떤 아이가 책상에 얌전히 앉아 있으려 하겠는가.(p.11)

  2. 창의력 운운하기 전에 아이에게 기본 바탕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아이들 숫자만큼의 육아법이 존재한다.(p.11)

  3. 결국 엄마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해야 내 아이가 잘 자랄까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아이 앞에 멘터로서 설 것인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p.37)

  4. (일본의 예를 들면서) 주관 없는 부모들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사회의 낙오자가 되었다. 실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일류 인재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p.61)

  5. 이렇듯 남과의 비교에서 생기는 피해의식은 '한'으로 변한다.(...)
    이럴 때 엄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직 앞 길이 정해져 있지 않은, 그래서 어떻게든 만들어 볼 여지가 있는 자기 자식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엄마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까맣게 잊어비리고 만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의 삶이 있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p.98)

  6. 문제는 의무가 단지 의무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충실히 행한 그 의무는 '나는 다른 부모에 비해 할 만큼 했다'는 자기 만족을 불러 일으키고, 나아가 자식이 성장하여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순간에 권리를 행사하려 들게끔 한다.(p.101)

  7.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엄마가 아이 앞에서 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인다면, 십중팔구 아이는 아버지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p.117)

  8. 21세기는 개인주의 시대다. 날이 갈수록 사회는 점점 더 전문적인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각 개인을 조화롭게 통합시키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p.151)

  9. 사소한 질문들이 가져온 효과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생각하고 관찰하는 습관이 몸에 밴 아이들은 학교에서 내준 과제물을 해결하는 자세에도 변화를 보였다.(p.172)

    * 도로시 리즈의 "질문의 7가지 힘"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7가지 힘 중의 두 번째 "질문은 생각을 자극한다"는 것을 사실로서 증명하는 듯한 부분입니다.

  10. 아이들과 함께 만든 5가지 법칙에 대한 얘기 (p.176~185)
    규칙을 만든다 /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다 /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 남을 배려한다 / 좋은 언어 습관을 기른다

  11. "엄마, 횡단 보도도 아닌데 길을 건너요?"
    마땅히 해줄 말이 없던 엄마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얼버무린다.
    "엄마랑 건널 때는 그래도 돼."
    픽 웃어 넘길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런 사소한 실수가 아이에게는 평생을 좌우할 가치관으로 자리잡는다는 사실이다.(p.192)

  12. 천재가 1%의 재능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이는 1%의 천성과 99%의 엄마 행동으로 만들어진다."(p.196)

이 글은 읽는 각도에 따라 매우 진부한 얘기로 치부될 수 있습니다. 전혀 특별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장병혜 박사나 그 자식들이 얼마나 천재성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성공 스토리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땐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남 얘기'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실로 본인에게 겸허하게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실천'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어떠한 교육 이론이나 체계적 방법을 적용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대상을 '아이'가 아니라 '엄마'(제가 보기에는 '부모') 자신에게로 돌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엄마에 대한 희생을 강조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여전히 아빠로서의 할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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