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embers.net 아카이브 · 2002–2009

손병목의 독서노트

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글을 읽으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뒤늦게 한국으로 귀화한 그의 유려한 한국어 문장에 감탄을 하고, 한국사에 대한 해박한 그의 지식과 비판 의식에 또 한 번 감탄을 합니다. 이래저래 별 다른 비판 의식 없이 한국에서 한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제   목 : 나를 배반한 역사
   지은이 : 박노자
   펴낸곳 : 인물과사상사 (초판 출간일 2003.4.23 |2003.6.10일刊 초판 4쇄를 읽음) ₩10,000

이 책은 우리의 '근현대 수난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19세기의 조선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미시사를 '개인주의' 관점에서 다시 보고 해석하고 그리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있는 현대사회의 '폭력적 논리의 이념적 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구한말 이래 '국민'이라는 담론이 가지는 '전체주의적 속성'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적 속성은 사회적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진화론'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며, 이를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구한말의 미시사라고 할만큼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많은 자료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풍부한 자료 인용과 남다른 시각 - 이로 인해 개인적으로 매우 뜻깊은 역사 여행을 경험했습니다. 보수냐 진보냐, 지배층의 역사냐 민중의 역사냐는 식의 이분법적인 시각이 아닌, 박노자 - 그만의 시각으로 역사를 정리하고 있어, 신선합니다. 그 시각의 참신함에 역사 공부가 즐거워집니다. 내친 김에 한국사 책 네 권을 더 샀습니다. 이 참에 한국사 지식을 체계적을 쌓고 싶습니다. 맘 속으로 늘 찜찜했던 정리되지 않은 역사 지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노자는 '수난'이라는 말로 글을 시작합니다. 비록 입장이 다르더라도 대개의 사학자들과 일반인들조차도 우리의 역사를 얘기할 때 '수난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대개의 사학자들이 그 '수난'을 말할 때는 외부 세력으로부터의 집단적 국가적 피해를 강조합니다. 외세의 침략을 통한 수난의 역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박노자의 시각은 다릅니다. 19세기 말의 조선을 "민초들의 일상에서 볼 경우 외세의 침범보다도 조선 사회의 내재적 위기가 훨씬 더 큰 고통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관리라는 이름의 폭력배에게 사냥감이 될까봐 백성들이 좋은 옷을 입거나 좋은 집짓기를 꺼렸던 나라, 관리자의 도둑질로 조선 군인들은 물론 미국에서 초빙된 외국 교관들도(!) 월급이 일 년 이상 밀리곤 했던 나라가 바로 19세기 조선의 모습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외부의 침략이 아닌 내재적 모순으로 인한 조선 백성의 수난이 더 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수난은 "외적들에게 삼천리 강토를 빼앗기고 부일배附日輩나 부미배附美輩들로부터 착취와 통제를 당하는 것도 고난이겠지만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압도당해 그들의 논리에 알게 모르게 길들여진 것이 가장 큰 치욕"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그 치욕적인 '논리'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문명이 야만을 정벌할 권리가 있다고 봤던 <독립신문> 필진의 세계관은 바로 그들이 존경해 마지 않은 이토 히로부미나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같은 조선 침략의 주범들의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그 원인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이런 제국주의적 논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들에게 깊이 내면화된 것이야말로 우리의 최대의 손실이자 수난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그 이면에 내재된 약육강식 우승열패優勝劣敗의 폭력적 '사회진화론' 사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구한말과 일제 시대의 지식인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제국주의 침략을 통해 민족적 저항 의식이 성장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저항 의식 못지 않게 한편에선 서구에 대한 숭배 현상을 불러왔는데, 개화파와 일제시대 지식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실상과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박노자는, '밖'의 화려함에 비해 '안'의 궁핍이 아무리 심해도 '밖'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선조들의 실수에서 배우자고 말합니다.

*
글이 길어질 것 같아 '개인주의'와 '유사 개인주의'의 잘못된 이해 - 즉 마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동일하게 사용되는 오류와, 역사적 인물을 통해 진정한 개인주의를 실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략했습니다.

부록

column20050127_s.jpg
column20050127_s.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