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목의 독서노트· ··조회 13,108
이태준의 《무서록(無序錄)》
일찍이 몽테뉴가 '수상록(隨想錄, Essais)'이라는 말을 자기 책의 이름으로 쓴 이래, 이 말은 수필집을 일컫는 대명사처럼 되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수필이라는 장르 명칭이 사용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중국에서도 명나라의 홍자성이 글을 지어 책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을 '채근담(菜根譚)'이라 하였습니다. 송나라 학자 왕신미의 글 "사람이 언제나 나물 뿌리를씹을 수 있다면 모든 일을 이루게 될 것이다"라는 글에서 '나물뿌리'라는 뜻의 채근을 따온 듯 합니다. 그 이름에서부터 청빈한 삶이 짐작됩니다. 두 책 모두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까지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제 목 : 무서록
지은이 : 이태준
펴낸곳 : 범우사 (초판 출간일 1993.3.30 / 2003.8.12일刊 3판 1쇄를 읽음) ₩2,800
상허(尙虛) 이태준의 《무서록(無書錄)》도 수필집입니다. 뜻을 풀어 쓰자면 '두서 없이 쓴 글' 정도 되는데,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붓가는 대로 쓴 글이 수필이니 그 뜻이 잘 통한다 하겠습니다. 이태준은 《무서록》보다 1년 전에 출간된 그의 명저 《문장강화》에서 수필이란 장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수필은 자기의 심적 나체다. 그러니까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세사(世事) 만반에 통효(通曉)해서 어떤 사물에 부딪치든 정당한 견해에 빨라야 할 것이요 정당한 견해에서 한 걸음 나아가 관찰에서나 표현에서나 독특한 자기 스타일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말 대로라면 수필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글입니다. 그저 붓가는 대로 두서 없이 쓴다 해도 거기에는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자기의 미'를 담은 정신을 발가벗긴 채 드러내야 하니, 풍만한 이와 빈약한 이가 금방 드러날 것입니다. 시체 수필을 40대 이후의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준이 30대에 쓴 《무서록》에서 발견되는 사물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의 경지는 자못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일찍이 '산문은 상허(이태준의 호), 운문은 지용'이라 하는 말도 있고, 당대에 문학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 우리 글의 문장을 익히는 사사의 본으로 삼았던 《문장강화》를 지었으니, 그 문장의 유려함이야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장도 문장이거니와 고작 30대에 세상을 관조하는 심오한 깊이가 느껴지니, 저 역시 30대임에도 차마 이러한 경지는 꿈도 못꾸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무서록》은 상허의 나이 37세인 1941년에 출간되었습니다.)
하늘 높은 가을에는 수필 읽기가 제격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저와 같이 가을을 심하게 타는 이들에게는, 쉽게 읽히면서도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급(級) 높은 수필이야 말로 심란한 마음을 다잡아주는 가을날의 상비약과도 같습니다.
수필은 직접 읽어봐야 맛입니다. 제가 아무리 평한들 무슨 느낌이 있겠습니까. 〈돌〉이라는 제목의 글을 그대로 옮겨 싣겠습니다.
지난밤에 찬비를 맞으며 돌아온 우산이다. 아침에 나와 보니 거죽에 조그만 나뭇잎 두엇이 아직 젖은 채 붙어 있다.
아마 문간에 선 대추나무 가지를 스치고 들어온 때문이리라.
그러나 스친다고 나뭇잎이 왜 떨어지랴 하고 보니 벌써 누릇누릇 익은 낙엽이 아닌가!
가을! 젖은 우산이 자리에서 나온 손엔 얼음처럼 찬 아침이다.
뜰에 내려 화단 앞에 서니 화단에도 구석구석에 낙엽이 보인다. 어쩐지 앵두나무가 꺼칠해졌고 살구나무도 끝가장귀들만 푸른 빛이 흔들릴 뿐, 굵은 가지들은 엉성하게 줄거리만 드러났다.
낙엽이 놓여 그런지, 눈에 선뜻 화단도 파리해졌다. 틈틈이 올려 솟는 잡초를 거의 날마다 한 웅큼씩 뽑아 주었는데 그것을 잊은 지 며칠 동안 화단은 상큼하니 야웨졌구나!
우썩우썩 자라던 힘이 한밤에 정지한 듯, 빛낡은 꽃송이들은 씨를 물고 수그렸고 살내린 가지 및에는 벌레 소리만 어지럽다.
과꽃과 코스모스가 아직 앞날을 보이나, 그들의 꽃은 워낙 가을 손님, 추풍(秋風)과 함께 설렁설렁 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잠깐이려니 생각하면 가을꽃의 신세는 피기도 전에 서글프다.
오래 볼 것이 무엇인가?
화단을 아무리 둘러보아야 눈에 머무름이 없다. 어느새 웅긋줄긋 올려솟는 것은 단을 모은 돌멩이밖에.
돌! 나는 다시 마루로 올라와 아침 찬비에 젖는 잡석(雜石)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좀더 돌에 애착하지 못했던 것이 적이 부끄러워도 진다.
동양화에 석수도(石壽圖)가 생각난다. 또 동양의 선비들이 돌석(石)자를 사랑하여 호(號)에까지 흔히 석자를 가진 것도 생각난다.
그것은 돌의 그 묵직하고 편안하고 항구한 성품을 동경한 때문이리라. 생각하면 돌은 동양인의 놀라운 발견이다. 돌을 그리고 돌을 바라 보고 이름까지 즐겨 돌로 부른 동양 예술가들의 심경은, 찰나적인 육체에 붙들린 서양인의 그것에 비겨 얼마나 차이 있는 존경할 것이리오!
돌!
가을 아침 우연히 비맞는 잡석을 보며 돌을 사랑한 우리 선인들의 청담고박(淸談枯朴)한 심경을 사모하다.
제 목 : 무서록
지은이 : 이태준
펴낸곳 : 범우사 (초판 출간일 1993.3.30 / 2003.8.12일刊 3판 1쇄를 읽음) ₩2,800
상허(尙虛) 이태준의 《무서록(無書錄)》도 수필집입니다. 뜻을 풀어 쓰자면 '두서 없이 쓴 글' 정도 되는데,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붓가는 대로 쓴 글이 수필이니 그 뜻이 잘 통한다 하겠습니다. 이태준은 《무서록》보다 1년 전에 출간된 그의 명저 《문장강화》에서 수필이란 장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수필은 자기의 심적 나체다. 그러니까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세사(世事) 만반에 통효(通曉)해서 어떤 사물에 부딪치든 정당한 견해에 빨라야 할 것이요 정당한 견해에서 한 걸음 나아가 관찰에서나 표현에서나 독특한 자기 스타일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말 대로라면 수필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글입니다. 그저 붓가는 대로 두서 없이 쓴다 해도 거기에는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자기의 미'를 담은 정신을 발가벗긴 채 드러내야 하니, 풍만한 이와 빈약한 이가 금방 드러날 것입니다. 시체 수필을 40대 이후의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준이 30대에 쓴 《무서록》에서 발견되는 사물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의 경지는 자못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일찍이 '산문은 상허(이태준의 호), 운문은 지용'이라 하는 말도 있고, 당대에 문학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 우리 글의 문장을 익히는 사사의 본으로 삼았던 《문장강화》를 지었으니, 그 문장의 유려함이야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장도 문장이거니와 고작 30대에 세상을 관조하는 심오한 깊이가 느껴지니, 저 역시 30대임에도 차마 이러한 경지는 꿈도 못꾸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무서록》은 상허의 나이 37세인 1941년에 출간되었습니다.)
하늘 높은 가을에는 수필 읽기가 제격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저와 같이 가을을 심하게 타는 이들에게는, 쉽게 읽히면서도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급(級) 높은 수필이야 말로 심란한 마음을 다잡아주는 가을날의 상비약과도 같습니다.
수필은 직접 읽어봐야 맛입니다. 제가 아무리 평한들 무슨 느낌이 있겠습니까. 〈돌〉이라는 제목의 글을 그대로 옮겨 싣겠습니다.
지난밤에 찬비를 맞으며 돌아온 우산이다. 아침에 나와 보니 거죽에 조그만 나뭇잎 두엇이 아직 젖은 채 붙어 있다.
아마 문간에 선 대추나무 가지를 스치고 들어온 때문이리라.
그러나 스친다고 나뭇잎이 왜 떨어지랴 하고 보니 벌써 누릇누릇 익은 낙엽이 아닌가!
가을! 젖은 우산이 자리에서 나온 손엔 얼음처럼 찬 아침이다.
뜰에 내려 화단 앞에 서니 화단에도 구석구석에 낙엽이 보인다. 어쩐지 앵두나무가 꺼칠해졌고 살구나무도 끝가장귀들만 푸른 빛이 흔들릴 뿐, 굵은 가지들은 엉성하게 줄거리만 드러났다.
낙엽이 놓여 그런지, 눈에 선뜻 화단도 파리해졌다. 틈틈이 올려 솟는 잡초를 거의 날마다 한 웅큼씩 뽑아 주었는데 그것을 잊은 지 며칠 동안 화단은 상큼하니 야웨졌구나!
우썩우썩 자라던 힘이 한밤에 정지한 듯, 빛낡은 꽃송이들은 씨를 물고 수그렸고 살내린 가지 및에는 벌레 소리만 어지럽다.
과꽃과 코스모스가 아직 앞날을 보이나, 그들의 꽃은 워낙 가을 손님, 추풍(秋風)과 함께 설렁설렁 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잠깐이려니 생각하면 가을꽃의 신세는 피기도 전에 서글프다.
오래 볼 것이 무엇인가?
화단을 아무리 둘러보아야 눈에 머무름이 없다. 어느새 웅긋줄긋 올려솟는 것은 단을 모은 돌멩이밖에.
돌! 나는 다시 마루로 올라와 아침 찬비에 젖는 잡석(雜石)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좀더 돌에 애착하지 못했던 것이 적이 부끄러워도 진다.
동양화에 석수도(石壽圖)가 생각난다. 또 동양의 선비들이 돌석(石)자를 사랑하여 호(號)에까지 흔히 석자를 가진 것도 생각난다.
그것은 돌의 그 묵직하고 편안하고 항구한 성품을 동경한 때문이리라. 생각하면 돌은 동양인의 놀라운 발견이다. 돌을 그리고 돌을 바라 보고 이름까지 즐겨 돌로 부른 동양 예술가들의 심경은, 찰나적인 육체에 붙들린 서양인의 그것에 비겨 얼마나 차이 있는 존경할 것이리오!
돌!
가을 아침 우연히 비맞는 잡석을 보며 돌을 사랑한 우리 선인들의 청담고박(淸談枯朴)한 심경을 사모하다.
부록

댓글 2
좋은 글 고맙습니다. 저도 한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태준의 "문장강화"는 읽었는데 손형의 말씀대로 대단한 글쓰기 교본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짧은 글이라도 써보고싶어서 글쓰기 교본을 이것 저것 10여권 읽어보았는데 역시 "문장강화"는 대단했어요.
그리고 박동규 교수가 쓴 "글쓰기를 두려워 말라" 와 "한승원의 글쓰기 교실"은 또다른 현대적 글쓰기의 길잡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서점의 맹점이 있더군요.
서평을 보고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이라는 책을 사서 보았는데 선전과는 정반대로 정말 상식이하의 책이었습니다.
실예는 없고 완전히 반복되는 레토릭만 가득 했어요.
그 정도를 글쓰기 교본이라고 세상에 내놓은 것을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외에도 여러 글쓰기 교본이 많은데 허병두 선생님이 쓰신 책도 좋았습니다.
사이토 다카시의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이라는 책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분으로부터도 심한 악평을 들은 바 있습니다. 그 책의 추천사를 쓴 공병호박사도 덩달아 욕을 먹더군요.
도움이 될 만한 여러 책 소개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읽어보겠습니다.
명절 연휴 건강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