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목의 독서노트· ··조회 11,812
프로타고라스
일전에 한겨레 신문의 금요일자 《한겨레 책·지성 섹션》에서 《프로타고라스》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2005.9.16일자). 거기에 50자 서평 코너가 있는데, 제가 이렇게 썼습니다.
"치열한 토론과 논리 전개, 요즘 텔레비전 토론 참석자들의 필독서! 2500년 전에도 이러했거늘 부끄럽지들 않은가!"
《프로타고라스》는 플라톤의 《대화편》 중의 하나입니다. 《대화편》은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대화편》의 제목이 곧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인 경우가 많은데 《프로타고라스》도 그러합니다.
당대 최고의 소피스트, 최초로 스스로 소피스트라고 자처한 자, 소피스트의 지존, 요즘으로 치자면 '프로타고라스 논구술 전문 학원장'으로 명성과 부를 동시에 안고 있었던 프로타고라스와 '길거리 철학자' (→ 그래서 따로 보수도 받지 못한, 또는 안 한)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입니다. 대화라기보다는 논쟁입니다. 논쟁도 그냥 논쟁이 아닙니다. 마치 가끔 손석희 아나운서가 아침까지 내리 진행하는 '끝장토론'을 연상하게됩니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 또는 언변술가의 말꼬리를 물고 무는 논쟁입니다.
제 목 : 프로타고라스
지은이 : 플라톤 / 최현 옮김
펴낸곳 : 범우사 (초판 출간일 1989.4.20 / 2002.4.10일刊 2판 1쇄를 읽음) ₩2,800
책의 상황 설정이 재미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자고 있는데 꼭두새벽에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립니다. 힙포크라테스라는 청년입니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들어와 흥분된 목소리로 반가운 소식을 전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 소식이란 다름 아닌 프로타고라스가 우리 동네(아테네)에 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에서 '프로타고라스 논구술 전문 학원장'이라고 했는데, 힙포크라테스가 이처럼 흥분하는 걸 보면 그 이상의 존재였던가 봅니다. 최고의 명강사이면서 동시에 연예인에 버금가는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힙포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하자 소크라테스는 "그는 그저께 왔네. 자네는 이제야 들었나 보네." 하면서 초치는 소리를 합니다. 그러자 힙포크라테스는 "신에게 맹세하지만 저는 어제 저녁에 들었습니다."라고 합니다. 뭐 그런 걸 가지고 신에게 맹세하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여하튼 힙포크라테스는 당장 그를 찾아가자고 조릅니다. 그에게 강의만 들을 수 있다면 모든 돈을 다 써도 상관 없다고 말합니다(힙포크라테스는 실제로 부잣집 아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흥분에 들뜬 힙포크라테스를 잠시 진정시키고 '소피스트'가 무엇인가에 대해 그와 잠시 얘기를 나눕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를 '영혼의 양식이 되는 학문을 마치 상품처럼 파는 자들'이라고 규정합니다. 아마 이 순간, 힙포크라테스, 잘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을 무지 답답한 사람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답답함을 뒤로 하고 날이 밝자 두 사람은 드디어 프로타고라스를 찾아갑니다.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가 드디어 만났습니다. 프로타고라스는 갈고 닦은 언변술과 쇼맨십으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들 들으라고) 소크라테스에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이 그들 주위에 둘러 앉습니다. 드디어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됩니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으로 논쟁 제 1막이 열립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어떠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첫번째 질문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프로타고라스의 대답과 소크라테스의 재질문이 계속해서 되풀이됩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주제는 '교육'입니다. 교육 중에서도 '덕'의 교육에 관한 것입니다. '덕'이라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그들은 한참을 얘기합니다.
처음엔 이랬습니다. '프로타고라스 = 덕은 가르칠 수 있다. vs 소크라테스 = 덕은 가르칠 수 없다'. 그런데 정말 웃긴 것은 책의 결말에 다다르면 이 둘은 서로 처음과 반대되는 주장을 합니다. '프로타고라스 = 곰곰히 생각해보니 덕은 가르치기 힘든 것 같다. vs 소크라테스 = 덕은 지식이므로 가르칠 수 있다'. 아마 둘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뭐야, 내가 딴 소리를 하고 있잖아!,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 또한 서로에 대해서 결코 만만찮은 상대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프로타고라스는 대놓고 소크라테스에게 탄복과 감탄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흘렀는지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말하면서 아쉽게 끝을 맺습니다.
《프로타고라스》에서 결국 승자는 없습니다. 서로의 논리적 헛점을 발견했지만 정작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던 프로타고라스가 길거리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맞아 진지한 대화에 임하고 마침내는 대화 상대자에게 '지혜에 있어서 몇 명 되지 않는 가장 뛰어난 사람 중의 하나'라고 극찬을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제가 한겨레 서평 코너에 요즘 TV 토론 프로그램 참석자들의 필독서라고 말씀드렸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토론을 하러 온 것인지 아니면 연설문 낭독을 하러 온 것인지, 자신이 준비한 말만 되풀이하여 얘기하는 어설픈 토론만 보다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벌써 이런 토론 문화가 있었다는 것에 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짧게 옮겨 적어놓고 보니 《프로타고라스》가 마치 정말 흥미진진한 책처럼 비치는데, 사실 중간 부분은 좀 지루합니다. 다소 말장난 같은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기술, 덕, 용기, 절제, 정의, 경건, 의, 선, 악, 추, 쾌락, 고통 등... 추상적 개념들을 가지고 논쟁을 하다보니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2500년 전의 이 대화가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큰 것 같습니다. 요즘도 찾아보기 힘든 토론 문화를 보며 반성하기도 하고, 안광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오늘날 교육 현실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하단 주석 참조), '언어'의 한계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고전이 왜 없을까,하는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다가, '고전에는 국적이 없다'는 말로 스스로 위로하기도 합니다. 기록 문화가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플라톤이 없었다면 아마 소크라테스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래저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고전'입니다.
*
안광복 선생님(중동고 철학교사)이 한겨레에 기고한 글을 보면, 악명 높은 주입식 암기 교육을 받은 386 세대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한 저항 의식을 지닌 세대로 자라난 반면, 비판적 합리적 창의적 사고라는 화두 아래 교육을 받은 지금의 아이들은 건국 이래 가장 생각하기 싫어하고 순응적이며 보수적인 세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프로타고라스》에서 막판에 서로의 결론이 뒤바뀌 듯, 눈에 보이는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치열한 토론과 논리 전개, 요즘 텔레비전 토론 참석자들의 필독서! 2500년 전에도 이러했거늘 부끄럽지들 않은가!"
《프로타고라스》는 플라톤의 《대화편》 중의 하나입니다. 《대화편》은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대화편》의 제목이 곧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자인 경우가 많은데 《프로타고라스》도 그러합니다.
당대 최고의 소피스트, 최초로 스스로 소피스트라고 자처한 자, 소피스트의 지존, 요즘으로 치자면 '프로타고라스 논구술 전문 학원장'으로 명성과 부를 동시에 안고 있었던 프로타고라스와 '길거리 철학자' (→ 그래서 따로 보수도 받지 못한, 또는 안 한)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입니다. 대화라기보다는 논쟁입니다. 논쟁도 그냥 논쟁이 아닙니다. 마치 가끔 손석희 아나운서가 아침까지 내리 진행하는 '끝장토론'을 연상하게됩니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 또는 언변술가의 말꼬리를 물고 무는 논쟁입니다.
제 목 : 프로타고라스
지은이 : 플라톤 / 최현 옮김
펴낸곳 : 범우사 (초판 출간일 1989.4.20 / 2002.4.10일刊 2판 1쇄를 읽음) ₩2,800
책의 상황 설정이 재미있습니다.소크라테스가 자고 있는데 꼭두새벽에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립니다. 힙포크라테스라는 청년입니다.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들어와 흥분된 목소리로 반가운 소식을 전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 소식이란 다름 아닌 프로타고라스가 우리 동네(아테네)에 왔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에서 '프로타고라스 논구술 전문 학원장'이라고 했는데, 힙포크라테스가 이처럼 흥분하는 걸 보면 그 이상의 존재였던가 봅니다. 최고의 명강사이면서 동시에 연예인에 버금가는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힙포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하자 소크라테스는 "그는 그저께 왔네. 자네는 이제야 들었나 보네." 하면서 초치는 소리를 합니다. 그러자 힙포크라테스는 "신에게 맹세하지만 저는 어제 저녁에 들었습니다."라고 합니다. 뭐 그런 걸 가지고 신에게 맹세하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여하튼 힙포크라테스는 당장 그를 찾아가자고 조릅니다. 그에게 강의만 들을 수 있다면 모든 돈을 다 써도 상관 없다고 말합니다(힙포크라테스는 실제로 부잣집 아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흥분에 들뜬 힙포크라테스를 잠시 진정시키고 '소피스트'가 무엇인가에 대해 그와 잠시 얘기를 나눕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를 '영혼의 양식이 되는 학문을 마치 상품처럼 파는 자들'이라고 규정합니다. 아마 이 순간, 힙포크라테스, 잘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을 무지 답답한 사람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답답함을 뒤로 하고 날이 밝자 두 사람은 드디어 프로타고라스를 찾아갑니다.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가 드디어 만났습니다. 프로타고라스는 갈고 닦은 언변술과 쇼맨십으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들 들으라고) 소크라테스에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이 그들 주위에 둘러 앉습니다. 드디어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됩니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으로 논쟁 제 1막이 열립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어떠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첫번째 질문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프로타고라스의 대답과 소크라테스의 재질문이 계속해서 되풀이됩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주제는 '교육'입니다. 교육 중에서도 '덕'의 교육에 관한 것입니다. '덕'이라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그들은 한참을 얘기합니다.
처음엔 이랬습니다. '프로타고라스 = 덕은 가르칠 수 있다. vs 소크라테스 = 덕은 가르칠 수 없다'. 그런데 정말 웃긴 것은 책의 결말에 다다르면 이 둘은 서로 처음과 반대되는 주장을 합니다. '프로타고라스 = 곰곰히 생각해보니 덕은 가르치기 힘든 것 같다. vs 소크라테스 = 덕은 지식이므로 가르칠 수 있다'. 아마 둘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뭐야, 내가 딴 소리를 하고 있잖아!,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 또한 서로에 대해서 결코 만만찮은 상대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프로타고라스는 대놓고 소크라테스에게 탄복과 감탄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흘렀는지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말하면서 아쉽게 끝을 맺습니다.
《프로타고라스》에서 결국 승자는 없습니다. 서로의 논리적 헛점을 발견했지만 정작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던 프로타고라스가 길거리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맞아 진지한 대화에 임하고 마침내는 대화 상대자에게 '지혜에 있어서 몇 명 되지 않는 가장 뛰어난 사람 중의 하나'라고 극찬을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제가 한겨레 서평 코너에 요즘 TV 토론 프로그램 참석자들의 필독서라고 말씀드렸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토론을 하러 온 것인지 아니면 연설문 낭독을 하러 온 것인지, 자신이 준비한 말만 되풀이하여 얘기하는 어설픈 토론만 보다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벌써 이런 토론 문화가 있었다는 것에 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짧게 옮겨 적어놓고 보니 《프로타고라스》가 마치 정말 흥미진진한 책처럼 비치는데, 사실 중간 부분은 좀 지루합니다. 다소 말장난 같은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기술, 덕, 용기, 절제, 정의, 경건, 의, 선, 악, 추, 쾌락, 고통 등... 추상적 개념들을 가지고 논쟁을 하다보니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2500년 전의 이 대화가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큰 것 같습니다. 요즘도 찾아보기 힘든 토론 문화를 보며 반성하기도 하고, 안광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오늘날 교육 현실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하단 주석 참조), '언어'의 한계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고전이 왜 없을까,하는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다가, '고전에는 국적이 없다'는 말로 스스로 위로하기도 합니다. 기록 문화가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플라톤이 없었다면 아마 소크라테스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래저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고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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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 선생님(중동고 철학교사)이 한겨레에 기고한 글을 보면, 악명 높은 주입식 암기 교육을 받은 386 세대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한 저항 의식을 지닌 세대로 자라난 반면, 비판적 합리적 창의적 사고라는 화두 아래 교육을 받은 지금의 아이들은 건국 이래 가장 생각하기 싫어하고 순응적이며 보수적인 세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프로타고라스》에서 막판에 서로의 결론이 뒤바뀌 듯, 눈에 보이는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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