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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오늘은 수능일입니다. 내신과 논술과 수능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에 옭매어 힘겹게 여기까지 달려온 수험생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냅니다. 진인사(盡人事)하였다면 대천명(待天命)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삶 자체가 그러하듯, 지나고 나면 진인사하지 못함이 늘 아쉽기만 할 뿐입니다. 수험생들에게 오늘은, 어쩌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인사의 소중한 의미를 알게되는 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겨울이 반갑지 않습니다. 없는 사람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겨울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이유로 겨울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습니다. 겨울 찬 바람에 예고없이 쓰러지는 분들의 소식이 유난히 많은 계절입니다. 몇 년 전부터 매년 이맘 때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쓰러지는 부모, 형제, 자매 곁에서 그들에게 평소 진인사하지 못함에 한스런 눈물이 흐릅니다. 그 슬픔 곁에서 보면서도 정작 나의 부모, 형제에게 내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거의 구제불능 단계입니다.
인생은 '무엇인가를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지만 '무엇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습니다. 지나간 시간이 아쉽고 후회되는 건 무엇인가를 해놓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 것입니다.
당나라 현종 때 이징(李徵)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이징은 스스로의 자존심을 감당하기 힘든 부족한 재능을 원망하다 결국은 발광하여 짐승으로 변합니다. 시인인 그는 처자식의 굶주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시업의 성취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탁월한 재능으로 격조 높은 시를 씀에도 허전한 그 무엇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결국 미치고, 마침내 호랑이로 변합니다. 산길을 지키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먹는 짐승이 되고 만 것입니다.
어느날 친구가 그 길을 지납니다. 호랑이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까지는 줄곧 내가 왜 호랑이가 되었을까 이상하게만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문득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왜 이전에 인간이었을까 생각하고 있질 않겠나. 참으로 무서운 일일세. 이제 조금 더 지나면 내 안에 있는 인간의 마음은 짐승으로서의 습관 속에 파묻혀 사라져 버릴 걸세."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약간의 재능을 허비해 버린 셈이지.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라고 입으로는 경구를 읊조리면서, 사실은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苦心)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나의 모든 것이었던 게지. 나보다도 훨씬 모자라는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것을 갈고 닦는데 전념한 결과 당당히 시인이 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야. 호랑이가 되어 버린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회한을 느낀다네."
이 이야기는 나카지마 아츠시의 《산월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나카지마 아츠시는 살아생전 겨우 두 권의 책만 남기고 30대에 요절하였습니다. 《산월기》는 그의 대표작입니다. 일본의 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려 고전의 반열에 든 작품입니다. 그의 대표작과 유작을 묶어 펴낸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에는 《산월기》를 포함하여 《명인전》, 《제자》, 《이능》 등 네 편이 들어 있습니다.
제 목 :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지은이 : 나카지마 아츠시 / 번역 : 명진숙 / 감역 : 신영복
펴낸곳 : 다섯수레(초판 출간일 1993.7.25)/ 2004.4.15일刊 초판 5쇄를 읽음/ 값 8,000원
《명인전》의 주인공 기창은 《산월기》의 이징처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이징은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울부짖다가 짐승이 되었지만 기창은 그의 소원인 '천하제일의 명궁'이 되고 맙니다. 그 경지는 불사지사(不射之射)의 경지입니다. 활을 쏘지 않고 표적을 떨어뜨리는 경지가 불사지사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지위(至爲)는 행하지 않는 것이고, 지언(至言)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지사(至射)는 쏘지 않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활'의 용도마저 잊어버리고 나무 인형처럼 무표정한 상태에 이릅니다. 그리고 조용히 세상을 떠납니다.
《제자》는 공자의 제자 자로의 이야기입니다. 평생을 공자와 함께한 제자 자로는 . 마치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의 형님 뉴스 코너에 나오는 길룡이와 비슷합니다. 길룡이는 행동대장입니다. 무식하지만 몸으로 형님을 모십니다. 자로가 공자의 제자로 들어오면서부터 아무도 공자를 함부로 보지 않았다고 하듯이, 제자는 공자의 보디가드요 행동대장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훗날 공자의 추천으로 위나라 공가(孔家)의 가문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공가의 한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덤벼들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선혈을 뒤집어쓴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 관을 주워 머리에 쓰고 끈을 묶으며 내뱉은 말, "보라! 군자는 관을 바로 하고 죽는 것이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자로. 자로에게 스승은 더이상 스승이 아닙니다. 아무런 이용가치도 염두에 두지 않는 오로지 경애의 대상으로서의 공자일 뿐입니다. 논리가 아닌 몰이해, 이해가 아닌 신뢰, 형식이 아닌 우직한 실천. 비판적으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나카지마 아츠시는 그 비판 너머의 진실을 말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능》. 사마천의 《사기》를 이야기하면서 '이릉의 화'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이능은 '이릉'으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이능》의 주인공은 세 명입니다. 이능과 사마천 그리고 소무, 이 세 사람의 인간 드라마입니다. 어찌보면 인간 드라마요, 어찌보면 단골 논술 주제인 '국가와 개인'의 문제를 함의한 정치 사회적인 작품으로 보입니다.
충성을 다했으나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이능, 그런 이능을 변호하다 궁형(宮刑)을 당한 사마천, 끝내 국가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고 홀로 절개를 지키다 마침내 고국인 한나라로 돌아간 이능의 20년지기 소무. 그들의 개인과 국가에 대한 고뇌와 치열한 인식의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혹시 8,000원의 여유가 있나요?
이 책 한번 사서 보세요. 아깝지 않습니다. 분량도 많지 않아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추천사를 쓰고 이철수 화백이 삽화를 그렸습니다.
겨울이 반갑지 않습니다. 없는 사람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겨울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이유로 겨울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습니다. 겨울 찬 바람에 예고없이 쓰러지는 분들의 소식이 유난히 많은 계절입니다. 몇 년 전부터 매년 이맘 때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쓰러지는 부모, 형제, 자매 곁에서 그들에게 평소 진인사하지 못함에 한스런 눈물이 흐릅니다. 그 슬픔 곁에서 보면서도 정작 나의 부모, 형제에게 내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거의 구제불능 단계입니다.
인생은 '무엇인가를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지만 '무엇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습니다. 지나간 시간이 아쉽고 후회되는 건 무엇인가를 해놓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 것입니다.
당나라 현종 때 이징(李徵)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이징은 스스로의 자존심을 감당하기 힘든 부족한 재능을 원망하다 결국은 발광하여 짐승으로 변합니다. 시인인 그는 처자식의 굶주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시업의 성취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탁월한 재능으로 격조 높은 시를 씀에도 허전한 그 무엇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결국 미치고, 마침내 호랑이로 변합니다. 산길을 지키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먹는 짐승이 되고 만 것입니다.
어느날 친구가 그 길을 지납니다. 호랑이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이제까지는 줄곧 내가 왜 호랑이가 되었을까 이상하게만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문득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왜 이전에 인간이었을까 생각하고 있질 않겠나. 참으로 무서운 일일세. 이제 조금 더 지나면 내 안에 있는 인간의 마음은 짐승으로서의 습관 속에 파묻혀 사라져 버릴 걸세."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약간의 재능을 허비해 버린 셈이지.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라고 입으로는 경구를 읊조리면서, 사실은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苦心)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나의 모든 것이었던 게지. 나보다도 훨씬 모자라는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것을 갈고 닦는데 전념한 결과 당당히 시인이 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야. 호랑이가 되어 버린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회한을 느낀다네."
이 이야기는 나카지마 아츠시의 《산월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나카지마 아츠시는 살아생전 겨우 두 권의 책만 남기고 30대에 요절하였습니다. 《산월기》는 그의 대표작입니다. 일본의 고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려 고전의 반열에 든 작품입니다. 그의 대표작과 유작을 묶어 펴낸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에는 《산월기》를 포함하여 《명인전》, 《제자》, 《이능》 등 네 편이 들어 있습니다.
제 목 :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지은이 : 나카지마 아츠시 / 번역 : 명진숙 / 감역 : 신영복
펴낸곳 : 다섯수레(초판 출간일 1993.7.25)/ 2004.4.15일刊 초판 5쇄를 읽음/ 값 8,000원
《명인전》의 주인공 기창은 《산월기》의 이징처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이징은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울부짖다가 짐승이 되었지만 기창은 그의 소원인 '천하제일의 명궁'이 되고 맙니다. 그 경지는 불사지사(不射之射)의 경지입니다. 활을 쏘지 않고 표적을 떨어뜨리는 경지가 불사지사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지위(至爲)는 행하지 않는 것이고, 지언(至言)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지사(至射)는 쏘지 않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활'의 용도마저 잊어버리고 나무 인형처럼 무표정한 상태에 이릅니다. 그리고 조용히 세상을 떠납니다.
《제자》는 공자의 제자 자로의 이야기입니다. 평생을 공자와 함께한 제자 자로는 . 마치 《웃찾사》라는 개그 프로의 형님 뉴스 코너에 나오는 길룡이와 비슷합니다. 길룡이는 행동대장입니다. 무식하지만 몸으로 형님을 모십니다. 자로가 공자의 제자로 들어오면서부터 아무도 공자를 함부로 보지 않았다고 하듯이, 제자는 공자의 보디가드요 행동대장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훗날 공자의 추천으로 위나라 공가(孔家)의 가문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공가의 한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뻔히 죽을 줄 알면서도 덤벼들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선혈을 뒤집어쓴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 관을 주워 머리에 쓰고 끈을 묶으며 내뱉은 말, "보라! 군자는 관을 바로 하고 죽는 것이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자로. 자로에게 스승은 더이상 스승이 아닙니다. 아무런 이용가치도 염두에 두지 않는 오로지 경애의 대상으로서의 공자일 뿐입니다. 논리가 아닌 몰이해, 이해가 아닌 신뢰, 형식이 아닌 우직한 실천. 비판적으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나카지마 아츠시는 그 비판 너머의 진실을 말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능》. 사마천의 《사기》를 이야기하면서 '이릉의 화'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이능은 '이릉'으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이능》의 주인공은 세 명입니다. 이능과 사마천 그리고 소무, 이 세 사람의 인간 드라마입니다. 어찌보면 인간 드라마요, 어찌보면 단골 논술 주제인 '국가와 개인'의 문제를 함의한 정치 사회적인 작품으로 보입니다.
충성을 다했으나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이능, 그런 이능을 변호하다 궁형(宮刑)을 당한 사마천, 끝내 국가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고 홀로 절개를 지키다 마침내 고국인 한나라로 돌아간 이능의 20년지기 소무. 그들의 개인과 국가에 대한 고뇌와 치열한 인식의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혹시 8,000원의 여유가 있나요?
이 책 한번 사서 보세요. 아깝지 않습니다. 분량도 많지 않아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추천사를 쓰고 이철수 화백이 삽화를 그렸습니다.
부록

댓글 4
고전을 딱딱하지 않게 무게잡지도 않으면서, 더구나 문학적 상상력까지 발휘해서 풀어놓았다는 게 이 책의 커다란 매력이지...
이사했다는 말만 듣고 연락도 못했구나. 잘 사는지..
참 용욱이 결혼식때는 내려갈건지 궁금하다.. 별 얘기 다쓰네^^
술이부작(述而不作)하면서 이렇게 감동으로 다가오는 책도 드문 것 같습니다.
용욱이 결혼식 때는 당일에 버스타고 갑니다~~ 그때 뵈요^^
요즘 나도 속물근성이 되는것 같더군요
재테크에 빠졌습니다.
그 재테크에 나온 이야기중에 "역사책을 구매하지 말라"라고 하는 문귀도 있더군요.
좀 씁씁했던 기억이 ...
즐겁게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