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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 엄홍길
제 목 :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부 제 : 히말라야 탱크 엄홍길 14좌 완등 신화
지은이 : 엄홍길
출판사 : 이레 (초판 출간일 2003.12)
운동이라고는 집 앞 자전거 도로에 나가는 것조차 귀찮아하기에 운동 선수든 산악인이든 제가 기억하는 이는 정말 드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엄홍길에 대해서는 간간히 들은 기억은 있으나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서점에서 우연히 책 표지를 봤는데 거기에는 '히말라야 탱크 엄홍길 14좌 완등 신화'라고 씌여있었습니다. 14좌? 14개? 그걸 다~??
그렇게해서 지난해 12월에 사두었던 책입니다. 순전히 호기심때문이었죠.
일요일 아침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습니다. 단 한 페이지도 그냥 건너뜀이 없이 한줄 한줄 참 정성스럽게 읽었습니다. 책 뒤에 따로 모아놓은 등반 용어를 참조해가면서, 그의 등반 일지를 참고해가면서 하나하나 읽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히말라야의 8,000미터 이상의 고산 14개를 (아시아 최초,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등정한 이야기를 좀 실감나게 볼 수 있겠지... 이 정도의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약간의 호기심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된통 얻어 맞았습니다. 중간 중간에 눈시울을 붉히며 훌쩍거리는 사이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마치 엄홍길의 발걸음을 따라 한 발 한 발 옮겨놓는 듯 글자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따라 읽었습니다.
초오유에서의 후배 박병태의 죽음, 안나푸르나 세번째 도전 중 셰르파 나띠의 죽음, 안나푸르나 네번째 도전 중 정상을 불과 얼마 앞두고 닥친 엄홍길의 중상, 드디어 다섯번째 안나푸르나 도전에서 성공하지만 후배 지현옥의 실종...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절박한 현장의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다치거나 죽을 때마다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났습니다. 따뜻한 방안에 앉아 책을 읽으며 혹한의 8000미터 히말라야 산에 있는듯 몸이 움추러들고, 저자의 말마따나 도대체 왜 저리 무모한 시도를 하는지 책장을 덮을 때까지 반문에 반문을 거듭했습니다.
이 책은 2000년 여름, 히말라야 8000미터 14좌 중 마지막으로 K2 등정에 성공하는 얘기로 끝맺음을 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그의 도전은 계속됩니다.
2000년 겨울 아콩카과(6,959미터) 등정
2001년 로체(8,516) 등정, 로체샤르(8,400) 7,800 도달, 시샤팡마(8,027) 등정
2002년 에베레스트(8,848) 등정, 벨로하(4,506) 등정, 피상피크(6,091) 등정
2003년 에베레스트(8,848) 등정, 로체샤르(8,400) 8,250 도달
일생일대 단 한 번도 어렵다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제 집 드나들듯 몇 번씩이나 등정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겠지요.
이제야 분명해졌습니다.
그가 왜 수많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아니 죽음을 담보로 산에 오르는지를.
엄홍길, 그는 어쩔 수 없이 산악인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평생 산을 동경하고 산과 함께 살다가 산으로 돌아갈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무슨 현학적인 이유 따위가 필요하겠습니까? 절친한 동료가 바로 옆에서 죽고 동상으로 발가락이 잘리고 발목이 완전히 부러지고, 매번 죽음의 경계에서 헤매다가... 그래도 그는 또 산으로 향하는데 말입니다.
에베레스트 완등 목표를 달성하고서는 히말라야 14좌 완등 목표를 세우고, 또 그것에 도달하니, 이제는 세계 최초로 16좌 등반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꿈을 꾸고 싶습니다.
그런 열정과 끈기를 닮고 싶습니다.
책장을 덮고 나니, 마치 제가 히말라야를 다녀온 듯 숨이 가쁩니다.
*
참, 저는 이 글 내내 '정복'이라는 말은 한 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물론 엄홍길의 책에서도 그같은 표현은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정복'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지 알 수 있습니다.
그저 히말라야의 신이 허락해준 잠깐의 시간을 머물다가 다시 내려온 것 뿐입니다.

부 제 : 히말라야 탱크 엄홍길 14좌 완등 신화
지은이 : 엄홍길
출판사 : 이레 (초판 출간일 2003.12)
운동이라고는 집 앞 자전거 도로에 나가는 것조차 귀찮아하기에 운동 선수든 산악인이든 제가 기억하는 이는 정말 드뭅니다.이 책의 저자인 엄홍길에 대해서는 간간히 들은 기억은 있으나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서점에서 우연히 책 표지를 봤는데 거기에는 '히말라야 탱크 엄홍길 14좌 완등 신화'라고 씌여있었습니다. 14좌? 14개? 그걸 다~??
그렇게해서 지난해 12월에 사두었던 책입니다. 순전히 호기심때문이었죠.
일요일 아침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습니다. 단 한 페이지도 그냥 건너뜀이 없이 한줄 한줄 참 정성스럽게 읽었습니다. 책 뒤에 따로 모아놓은 등반 용어를 참조해가면서, 그의 등반 일지를 참고해가면서 하나하나 읽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히말라야의 8,000미터 이상의 고산 14개를 (아시아 최초,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등정한 이야기를 좀 실감나게 볼 수 있겠지... 이 정도의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약간의 호기심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된통 얻어 맞았습니다. 중간 중간에 눈시울을 붉히며 훌쩍거리는 사이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마치 엄홍길의 발걸음을 따라 한 발 한 발 옮겨놓는 듯 글자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따라 읽었습니다.
초오유에서의 후배 박병태의 죽음, 안나푸르나 세번째 도전 중 셰르파 나띠의 죽음, 안나푸르나 네번째 도전 중 정상을 불과 얼마 앞두고 닥친 엄홍길의 중상, 드디어 다섯번째 안나푸르나 도전에서 성공하지만 후배 지현옥의 실종...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절박한 현장의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다치거나 죽을 때마다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났습니다. 따뜻한 방안에 앉아 책을 읽으며 혹한의 8000미터 히말라야 산에 있는듯 몸이 움추러들고, 저자의 말마따나 도대체 왜 저리 무모한 시도를 하는지 책장을 덮을 때까지 반문에 반문을 거듭했습니다.
이 책은 2000년 여름, 히말라야 8000미터 14좌 중 마지막으로 K2 등정에 성공하는 얘기로 끝맺음을 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그의 도전은 계속됩니다.
2000년 겨울 아콩카과(6,959미터) 등정
2001년 로체(8,516) 등정, 로체샤르(8,400) 7,800 도달, 시샤팡마(8,027) 등정
2002년 에베레스트(8,848) 등정, 벨로하(4,506) 등정, 피상피크(6,091) 등정
2003년 에베레스트(8,848) 등정, 로체샤르(8,400) 8,250 도달
일생일대 단 한 번도 어렵다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제 집 드나들듯 몇 번씩이나 등정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겠지요.
이제야 분명해졌습니다.그가 왜 수많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아니 죽음을 담보로 산에 오르는지를.
엄홍길, 그는 어쩔 수 없이 산악인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평생 산을 동경하고 산과 함께 살다가 산으로 돌아갈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무슨 현학적인 이유 따위가 필요하겠습니까? 절친한 동료가 바로 옆에서 죽고 동상으로 발가락이 잘리고 발목이 완전히 부러지고, 매번 죽음의 경계에서 헤매다가... 그래도 그는 또 산으로 향하는데 말입니다.
에베레스트 완등 목표를 달성하고서는 히말라야 14좌 완등 목표를 세우고, 또 그것에 도달하니, 이제는 세계 최초로 16좌 등반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꿈을 꾸고 싶습니다.
그런 열정과 끈기를 닮고 싶습니다.
책장을 덮고 나니, 마치 제가 히말라야를 다녀온 듯 숨이 가쁩니다.
*
참, 저는 이 글 내내 '정복'이라는 말은 한 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물론 엄홍길의 책에서도 그같은 표현은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정복'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지 알 수 있습니다.
그저 히말라야의 신이 허락해준 잠깐의 시간을 머물다가 다시 내려온 것 뿐입니다.

부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