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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주년 빅 이벤트! - 2002. 4. 25
결혼 3주년 빅 이벤트를 할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직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애를 데리고 어디 마땅히 갈만한 곳이 있어야지요.
회사에서 30분 일찍 퇴근했습니다. 사실 30분 일찍 오나 늦게 오나 크게 다를 건 없지만, 그래도 특별한 날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조금 일찍 퇴근한 거죠.
오자마자 동주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동네의 횟집에 갔습니다. 아니 일식집이라고 하는 것이 더 근사하겠네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동주를 데리고 갈만한 곳은 우리 집으로부터 10분 이내의 거리여야 했습니다(아직은 약을 먹고 있는 상황인지라...). 그리고 가족이 같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이 있어야 했구요. 불과 몇 일 전만 해도 감히 우리 동주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지도 못할 상황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래도 천만다행이죠.
우리 세 식구 첫 나들이인 셈입니다. 병원에 가기 위해 동주를 데려나온 것 외에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 상황이 제겐 큰 행복으로 느껴집니다. 아내도 저와 비슷한 느낌이었나 봅니다. 결혼 3주년 기념으로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안하고, 그 흔한 꽃 한송이 안 샀습니다. 그런데도 둘은 그냥 행복했습니다.
“당신 행복하지?” “응, 행복해.” 이런 식입니다.
결혼 3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 회사가 3번이나 바뀌었고 고속도로 교통 사고로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아내 역시 갑작스런 일로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우리 동주도 어렵게 어렵게 태어났구요.
10평도 안되던 집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어찌됐건 그 때에 비하면 꽤나 넓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엔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지나고 나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아내가 마음에 안 들 땐 성격 차이 때문에 정말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둘 다 마찬가지였겠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성격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설익은 풋부부의 어설픈 순간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차이’를 끌어 안기 시작했습니다. 남남과 부부의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지나치게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살면서 정들다 보면 그냥 다~ 이해가 됩디다. 물론 거기에는 서로에 대한 약속과 신뢰와 책임이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노력이 없이는 안되죠.
겨우 3년 살아놓고서 30년 산 사람처럼 말하죠? 아무렴 어떻습니까, 제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걸 어쩌겠습니까?
결혼 3주년 공식 행사는 횟집에 가서 광어 한 접시 먹고 온 것으로 끝입니다.
대신 집으로 돌아온 뒤 초보 부모를 위해 우리 딸이 빅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뒤집기를 하더니 오늘은 그야말로 능수능란하게 - 아주 자연스럽게 뒤집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목도 못 가누는데 말입니다.
동주 아빠 손병목이었습니다.

아직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애를 데리고 어디 마땅히 갈만한 곳이 있어야지요.
회사에서 30분 일찍 퇴근했습니다. 사실 30분 일찍 오나 늦게 오나 크게 다를 건 없지만, 그래도 특별한 날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조금 일찍 퇴근한 거죠.
오자마자 동주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동네의 횟집에 갔습니다. 아니 일식집이라고 하는 것이 더 근사하겠네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동주를 데리고 갈만한 곳은 우리 집으로부터 10분 이내의 거리여야 했습니다(아직은 약을 먹고 있는 상황인지라...). 그리고 가족이 같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이 있어야 했구요. 불과 몇 일 전만 해도 감히 우리 동주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지도 못할 상황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래도 천만다행이죠.우리 세 식구 첫 나들이인 셈입니다. 병원에 가기 위해 동주를 데려나온 것 외에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 상황이 제겐 큰 행복으로 느껴집니다. 아내도 저와 비슷한 느낌이었나 봅니다. 결혼 3주년 기념으로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안하고, 그 흔한 꽃 한송이 안 샀습니다. 그런데도 둘은 그냥 행복했습니다.
“당신 행복하지?” “응, 행복해.” 이런 식입니다.
결혼 3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 회사가 3번이나 바뀌었고 고속도로 교통 사고로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아내 역시 갑작스런 일로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우리 동주도 어렵게 어렵게 태어났구요.
10평도 안되던 집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어찌됐건 그 때에 비하면 꽤나 넓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음엔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지나고 나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아내가 마음에 안 들 땐 성격 차이 때문에 정말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둘 다 마찬가지였겠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성격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설익은 풋부부의 어설픈 순간들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차이’를 끌어 안기 시작했습니다. 남남과 부부의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지나치게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살면서 정들다 보면 그냥 다~ 이해가 됩디다. 물론 거기에는 서로에 대한 약속과 신뢰와 책임이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결국은 노력이 없이는 안되죠.
겨우 3년 살아놓고서 30년 산 사람처럼 말하죠? 아무렴 어떻습니까, 제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걸 어쩌겠습니까?결혼 3주년 공식 행사는 횟집에 가서 광어 한 접시 먹고 온 것으로 끝입니다.
대신 집으로 돌아온 뒤 초보 부모를 위해 우리 딸이 빅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뒤집기를 하더니 오늘은 그야말로 능수능란하게 - 아주 자연스럽게 뒤집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목도 못 가누는데 말입니다.
동주 아빠 손병목이었습니다.

부록

댓글 2
얼마전 저도 결혼 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1주년, 2주년 ... 해를 거듭해도 별반 해준것 없고, 그저 '오랫만에 외식하자!' 하며 밖으로 데리고 나와 항상 즐겨찾는 집 근처 고기집에서 갈비를 뜯는 게 제 집의 행사였습니다.
여기엔 일이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한편으론 가정에 대한 무관심도 섞여있었던 것 같네요.
이번 5주년도 그런 식으로 넘어갈 것 같았지만, 어느새 와이프가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사두었더군요. 외식으로 끝낼 것을 뻔히 알기에 먼저 선수를 친 것으로 생각됩니다.
프리랜서였던 이유로 인해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제 옆자리에 앉은 4살박이 상원이 제가 하는 것을 따라하더군요.
테이블 오른쪽 감춰져 있는 식사용 테이블을 따라 올리고, 그리고 나선 신문은 펴고(전 제대로 읽었지만, 상원이는 신문을 뒤짚어보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더라구요).
그렇게 2박 3일을 보냈습니다. 때론 칭얼대기도 하고, 어떨때는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아빠한테 짜증을 내거나, 심지어 마우스를 뺏어가는 놀라운 순발력을 발휘하지만 여전이 귀엽기만 합니다.
행복은 이런 작은 일에서 오나 봅니다. ^^
벌써 결혼 5주년이라... 아마 저도 결혼 5주년이 되더라도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냥 지금의 평범함이 그대로이기를 바랄뿐입니다.
비록 티격태격하더라도 큰 근심거리없이 평범하게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습니다. 그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