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embers.net 아카이브 · 2001–2009

세상 사는 이야기

어디 가서 소리라도 지르세요

최근 6개월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독서노트를 빼먹지 않고 썼습니다. 한 주에 서너번 쓰는 것이지만 월요일은 새로운 한 주를 출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가급적 무리(?)를 해서라도 썼던 것입니다.
어제 3월 들어 첫 월요일에 독서노트를 쓰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주말에 제대로 책을 읽지 못하여 못 쓴 것이지만,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리하여 책을 읽지 아니하였습니다. 몸이 예전만 같지 않았습니다.
아니, 예전과 다름이 없었는데 의사의 말씀을 듣고 나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경희대 한방병원에 갔었습니다. 딱히 어디 아픈 데도 없는데 돈 들여 보약補藥을 짓는다니 제 성격에 별로 내키지는 않았으나 아내가 예약해 놓은 거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몇 분도 안 되어 후딱 진찰하는 시늉만 내고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일반 병원과는 좀 달랐습니다. 밖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 듯 진찰하러 들어갔다 하면 수십 분은 기본이었습니다.
제 차례가 왔습니다. 의사 앞에 앉으니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좀 피곤한 것 같고 변도 좋지 않고..." 뭐 입에 발린 몇 마디 하고 말았습니다. 의사가 진찰을 한다고 누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가슴과 배를 몇 군데 만지고 톡톡 치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에 잠은 몇 시간 자나요?" 그래서 "뭐 다섯 시간 정도? 아니 네 다섯 시간 정도 잡니다."
그 외에 몇 마디 더 묻고 의사는 최종 판단을 한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몸이 상당히 긴장되어 있습니다. 마치 낚싯줄과 같이 아주 팽팽한 상태입니다. 지금 당장 아무 이상 없는 것 같지만 어느 한 곳에 이상이 생기면 모든 것이 무너질 정도로 극도로 긴장된 상태입니다.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 평소에 어디 가서 소리라도 지르세요." 성격 느긋하고 사람 좋게 생긴 의사의 말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내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려고 노력했었는데 어디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오라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극도로 긴장된 상태라니! 비록 육체적인 운동은 잘 안 해도 웬만한 스트레스를 자정自淨하여 늘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고 믿었었는데.
괜히 해보는 '약 팔라고' 해보는 소리는 아닌지 귀가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약간의 몸을 보해주는 약을 지은 것 외에는 '어디 가서 소리 지르고,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가볍게 운동을 하라'는 것이 처방의 전부였습니다.

일요일 낮에 가족과 함께 동네에 있는 산에 올라갔습니다.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 사는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습니다. 아이도 신이 나서 연신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줍기에 바쁩니다. 아내와 나는 등을 맞대고 서로를 업어가며 주욱주욱 스트레칭을 했습니다.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있는 날이면 자주 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내더러는 아이를 어린이 집에 보내고 매일같이 들러서 운동을 하라고 일렀습니다. 아내도 그러하겠다고 말합니다.
아내가 소리를 질러보라고 말합니다. 나는 산에서 소리지르면 주변 사람들 시끄럽고 산에 사는 동물들이 놀란다고,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내와 아이가 몇 번을 "야호~"하는 사이에 저는 그냥 조용히 걷기만 했을 뿐, 결국 그냥 돌아왔습니다.

아, 나란 놈은 정말 소리 한 번 지르기 힘든 성격이었구나. 의사가 처방같지 않은 처방을 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참, 월요일에는 '극도로 긴장된 상태'를 좀 풀어보려고 일부러 새벽에 일어나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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