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조현 기자의 休心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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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정산 상무주암 현기 스님
수첩 볼펜 카메라 다 버리자 비로소 ‘죽비’ 선물
죽 한그릇 자비는 덤…“외로움? 좋다,이렇게 좋다”

부끄러웠습니다. 20여년의 고독 속에서 피어난 내면의 빛을 훔치려던 심보가 죄스럽고, 그것을 모조리 기사와 사진으로 담아 내려던 욕심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지난 몇 해 동안 이름도 자취도 없이 살다 열반해버린 근현대 선지식들의 흔적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런 은둔의 선사들을 찾아 산사를 헤매고 마침내 깊은 산사와 암자의 선방과 토굴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숨은 은자’를 발견했을 때의 그 감회란 산삼을 캐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전설이나 신화 속에만 있을 법한 치열하고 자유롭고 자비로웠던 선사들이 불과 20~30년 전에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했다면, 왜 지금이라고 없을 것인가. 다만 우리가 세속의 조미료 향과 중독성 미각에 취해서 무형 무색 무취로 너무도 은은한 그들의 향기를 놓쳐 버렸을뿐인 것은 아닐까. 그 은자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일 수도 있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동영상까지 준비해 형상과 그림자, 욕심껏 담으려했던 부끄러움
그래서 마침내 찾아 나선 이가 상무주암의 현기 스님이었습니다. 그는 70년대까지 여러 선방에서 이름깨나 떨치던 선승이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로부터 20여년. 그는 지리산 줄기인 삼정산 1100고지 상무주암에 은둔해 홀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초행길엔 세상에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를 동영상에까지 담을 동행들도 함께 했습니다. 그 때 마주한 현기 스님의 눈빛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보되 보지 않는 눈, 형상이 아니라 그림자와 본지를 함께 꿰뚫는 듯이 투명한 눈, 요람처럼 전 존재를 감싸 안는 그런 눈빛을 마주한 순간 오직 형상과 그림자를 욕심껏 담으려던 그 마음이 부끄러워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