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embers.net 아카이브 · 2001–2009

손병목의 독서노트

김훈의 《자전거 여행》

책 머리글부터 재미있습니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그래서 판권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들 샀나?
2003년 5월에 찍은 제가 산 책은 벌써 초판 22쇄였습니다.
자전거 몇 백 대는 샀겠습니다... ^^

책 머리 글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52살의 여름에
김훈은 겨우 쓴다

그렇게 겨우 쓴 글의 감동은 상상 이상입니다.
김훈의 글이 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말은 귀가 닳도록 들어왔지만, 사실 전 이 책을 통해 김훈을 처음 대했습니다.
그리고 깊이 후회하며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경건하고 감칠맛 나는 문장을 근자에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글에는 권위나 가식이 전혀 묻어있지 않지만, 감히 퇴계의 제자들이 스승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듯 참된 스승에게서 느껴지는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이 글은 김훈이 자전거를 타고 여수 향일암에서 서울 여의도까지의 여행하며 느낀 글들입니다.

여수 향일암 - 남해안 경작지 - 식영정,소쇄원,면앙정 - 광주 - 옥구 염전 - 만경강 하구 갯벌 - 안면도 - 구례 - 화개면 쌍계사 - 고성 - 선암사 - 도산 서원과 안동 하회 마을 - 경주 감포 - 소백산 의풍 마을 - 부석사 - 영일만 - 진도 - 덕산재에서 물한리 - 도마령 - 문경새재 - 관음리 - 양양 선림원지 - 태백산맥 미천골 - 섬진강 여우치, 덕치 마을, 마암분교 - 암사동,몽촌, 잠실, 여의도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력이 솟아납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치열한 그의 삶의 경륜은 앎 그 이상이며, 그러기에 그가 보고 느끼는 것은 설익은 지식으로는 차마 느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유홍준의 글이 앎의 해박함과 구수한 입담이 좋았다면 이 글은 앎의 해박함은 물론이거니와 생각의 깊이와 경험의 폭이 나와는 다름을 깊게 느끼게 합니다.

'가든'이며 '러브호텔', 심지어 명산 최정상에 우뚝 선 이동전화 송신을 위한 첨탑이 우리나라 산천 없는 곳 없지만, 그의 자전거는 속세의 길을 저어가며 이 누린내 나는 인간의 풍경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길을 피해가며 정작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른 책들처럼 감명 깊게 읽은 문장들을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상깊었던 구절을 몇 자 옮겼다가, 홀로 달랑 떨어져 나온 문장의 맛이 자전거 여행에 심취되었을 때의 그것과는 너무나 달라, 결국 지워버렸습니다.
참, 글 못지 않게, 글 사이사이 글의 맛을 더해주는 사진 역시 일품입니다.

혹 아직까지 못 읽으신 분들은 이번 주말에 마음 편히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후다닥 읽어버리는 책은 아닙니다. 마치 자전거 페달을 밟듯 호흡을 가다듬으며 저자의 걸음 속도에 맞춰나가며 그렇게 읽으면 좋겠습니다.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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