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embers.net 아카이브 · 2002–2009

손병목의 독서노트

지승호 인터뷰집 - 마주치다 눈뜨다

어제는 참 말을 많이 한 하루였습니다. 아침에 시작한 회의가 장소를 옮겨가며 저녁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술자리까지 이어졌습니다. 참 말이 많았습니다.
이런 날은 예외없이 가슴 한켠이 공허해집니다. 글을 쓸 때야 긴장도 하고 깊이 생각하고, 다시 읽으면서 지우고 고치기를 반복하여 어느 정도 완성된 꼴을 갖추지만, 말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목이 쉬도록 내뱉은 말들 중에서 주워 담았으면 좋았을 말들이 꼭 섞여 있게 마련이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말이 많아지면 자신의 밑천도 금방 드러납니다. 글은 주로 귀납적으로 푸는 반면에 말은 대개 연역적으로 시작하는데, 느낌이나 주장 등 결론을 먼저 얘기할 땐 괜찮다가 막상 그 논거를 말하다보면 스스로 모순을 만들어 냅니다. 사전에 생각이 부족했던 것이죠. 말의 궁합을 맞추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모순과 공허함이 두려워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요要는 말을 많이 하더라도 일관성을 지키고 논리적일 수 있도록 항상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量의 문제가 아니라 치열함의 문제 같습니다. 약간의 기술적 문제도 있다고 봅니다. 기술적 문제라 함은, 고민하되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적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도로시 리즈의 《질문의 7가지 힘》이 적절한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질문의 7가지 힘》리뷰 보기)

말이 좀 길어졌습니다만, 요要는 글쓰기와는 다르게 '말하기'는 많은 논리적 모순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의 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느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주제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말은 명쾌하며, 그러기 때문에 힘이 있고 감동이 있습니다.


   제   목 : 마주치다 눈뜨다
   부   제 : 인터뷰 | 한국사회 탐구
   지은이 : 지승호 인터뷰집
   펴낸곳 : 그린비 (초판 출간일 2004.9.25 |2004.12.5일刊 초판 2쇄를 읽음) ₩12,000

지승호의 《마주치다 눈뜨다》는 인터뷰집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 나오는 인터뷰이(=인터뷰 대상자)와 한 두 시간 또는 서너 시간 얘기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인터뷰이들이 시간과 공을 들여 논리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인터뷰 전문 작가 지승호씨와 두 세 시간 '말하기'한 내용이 전부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인터뷰집, 그러니까 인터뷰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을 처음 봤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단하여, 그것에 이끌려 마치 잡지를 보듯이 가볍게 읽어볼 요량料量으로 샀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인터뷰집도 하나의 단행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논리적 글쓰기를 통해 완성된 잘 짜여진 책보다 더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만나 조금은 어색한 인사를 하고, 인터뷰어가 사전에 조사한 자료를 보면서 인터뷰이에게 질문하고, 대답하고... 막상 예상치 못한 질문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대답을 하고, 사이사이에 웃기도 하고... 이런 장면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그러면서도 말의 늘어짐이 없고 명쾌하니, 제가 매력적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김동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손석희 아나운서, 신강균 앵커와 최원석 PD. 하나같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거침없이 자신의 얘기를 쏟아내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안타깝게도 신강균 앵커와 그가 진행하는 "MBC 뉴스 서비스 사실은"은 최근 구찌 핸드백 사건으로 폐지됐다고 합니다. 진보주의자에게 도덕성은 정말 치명적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데일리 서프라이즈 김달중 기자의 글로 대신합니다. ☞ 관련 기사 보기)

책 내용에 대한 정리는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지승호의 '시비걸기' 사이트(http://home.freechal.com/sibi)에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포함하여 170여 건의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참 괜찮은 사이트입니다. 즐겨찾기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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