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embers.net 아카이브 · 2001–2009

세상 사는 이야기

주말농장체험기 #6 - 김장용 배추, 무 파종

어제 새벽에 일어나 '건강하고 건전한 몸과 마음을 위해' 금주 선언을 하고 바로 주말 농장으로 갔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것은 새벽 5시, 새벽에 뻥 뚫린 동부간선도로를 따라 도봉산 주말농장에 도착하는 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리 서둘러 갔던 까닭은 어제가 장인어른 생신이라, 미리 농장에 다녀온 다음 인천 처가로 가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농장의 새벽 공기는 자연이 주는 모든 상쾌함을 한꺼번에 전해주는 듯 했습니다. 산속에서 한참을 머물다온 바람은 나무와 풀, 산의 정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고향 안동 산골에서 느꼈던, 가끔 경기도 강원도로 MT가서 새벽에 느꼈던 그런 상쾌함 - 아, 정말이지 이런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지난 주에도 주말에 바쁜 일이 있어, 아침 일찍 홀로 왔었습니다. 땅을 모두 갈아 엎고 퇴비를 섞은 다음, 김장용 배추 모종을 심고 무 씨앗을 파종했었습니다. 손바닥만한 밭을 갈아엎고 파종하는 데에도 두어 시간이 족히 걸렸습니다. 배추 모종 36포기를 심었고, 남은 곳에는 무 씨를 네 줄 정도 심었습니다. 배추를 심기 위해 이랑을 12개를 만들어 둔덕에 배추를 심고 고랑은 비교적 깊이 파서 물이 고이지 않게 했습니다. 제딴에는 최선을 다한 셈입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어제 이른 아침에 다시 찾았는데, 서른 여섯 포기의 배추 중에 겨우 반만 제대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어떤 놈은 서너배 컸는데, 어떤 놈은 말라 죽었고, 어떤 놈은 자라기는 하지만 큰 놈에 비해 덩치가 반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처지의 밭도 몇 있었지만, 대개는 큼직큼직하게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한편 부럽기도 하고, 내 밭의 배추들은 모두 이 모양이냐고 마음도 좀 상했습니다.

땅의 형세를 보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마도 퇴비와 흙을 제대로 섞지 못하고 급하게 모종을 심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미리 거름을 충분히 섞은 다음 시간을 두고 모종을 심었어야 하는데, 급하게 심어 배추 모종의 뿌리가 거름에 직접 맞닿아서 뿌리가 자라지 못하고 썪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 돌림병이 돌지 말라고 모종 심는 자리에 붕사를 뿌린 것도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붕사도 미리 뿌리고 잘 섞었어야 하는데, 배추를 심기 직전에 붕사를 근처에 뿌리고 채 섞이지도 않은 곳에 모종을 심어 뿌리가 상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모종을 심고 처음 하루 이틀은 뿌리가 내리도록 잘 돌봐줘야 하는데,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잘 자라고 있겠거니'하며 찾아왔으니, 그 사이에 모종은 몸살을 견디지 못해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모판에서 자란 모종이 새 땅에 옮겨 심어지면, 모종은 한동안 몸살을 앓는다는 합니다. 채소든 곡식이든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주인의 무심함에 어린 모종만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서른 여섯 포기면 서울,인천의 우리 가족들 모두 먹을 수 있을 정도 충분하니 올 가을 배추걱정 하지 말라고 지난 주에 장모님께 큰소리 쳤는데...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놈들을 잘 보살펴서 무럭무럭 키우는 수밖에요.

잡초도 없고, 엊그제 내린 비로 땅도 마르지 않아, 물만 조금 더 뿌린 다음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 생에, 뭐든 거저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정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집안의 배경이 좋은 것도 아니요, 나의 선천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내가 후천적으로 개발한 능력 또한 그리 볼 만한 것도 없어 오로지 맨 몸으로 부딪치며 겨우겨우 만들어 온 것이 '지금의 나'입니다. 1,000원짜리 복권조차 당첨된 적 없고, 장난삼아 하는 노름 놀이에서조차 단 한 번도 제대로 이긴 적이 없으니, 그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내 평생 요행이라고는 꿈도 꾸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제 자신이 좀 웃기죠? 세상에 어디 이런 사람이 저 뿐이겠습니까, 대개들 그러한데 말입니다. 손바닥만한 밭에 배추 몇 포기 자라지 않았다고 별소리를 다한다 싶지요^^

제 딴에는 땀을 흘리며 밭을 갈고 모종을 심고 씨앗을 뿌렸다고 해도, 그 정성이 땅에 미치지 못했는데, 요행히 그 녀석들이 잘 자라길 바랐던 것이 욕심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盡人事待天命.

내년에 다시 한다면 정말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살아 남은 녀석들을 튼실하게 잘 키워서 겨우내내 우리 가족 밥상에 오를 김치로 만들 수 있게 잘 보살펴야겠습니다.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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