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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목의 독서노트

탐서주의자(耽書主義者)의 책

세상에는 책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하다 못해 저 역시 어느 순간부터 '실용적 책읽기를 즐겨하는 자'라고 스스로를 규정짓고 개인적으로 중장기 프로젝트 차원에서 책 읽기에 매진하려 하니 말입니다.
모름지기 '~가'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것만큼 낯 간지러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혹여 이런 저에게 남들이 '독서가'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다,라고 받아들일지는 몰라도 스스로 독서가라고 규정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표정훈의 이 책을 읽고서 혹여 제가 얼치기 독서가 행세를 했던 적이 있었다면 부끄럽고 부끄러운 마음에 절필(^^)을 마음 먹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스스로를 '실용적 책읽기를 즐겨하는 사람' 정도로 규정했으니, 나의 교만과 허세를 반성하며 절필의 결심으로까지 확대되는 일은 생기기 않았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표정훈은 '독서가'입니다. 스스로는 '글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매문가(賣文家) 또는 ‘책의 소유를 삶의 유일지상의 목적으로 삼고 책 내용보다는 책 자체를 중시하며 책을 진(眞)과 선(善) 위에 두는' 탐서주의자(耽書主義者)라고 칭하고 있으나 그 이전에 그는 독서가입니다. 동서양 고전과 현대의 명저들을 종횡으로 훑은 잡독가(雜讀家)이며, 이를 토대로 어떤 사안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고 이를 하나의 일관된 관점으로 통합시키는 '통합적 복합성(integrative complexity)'이 대단히 뛰어난 문장가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러합니다.

어리석게도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표정훈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 저의 독서의 편협함 때문이 아니라 아직 저의 책 읽기가 기본적으로 양적 토대를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많이 읽되 그것이 한쪽으로 쏠려있어야 편협이라는 말을 쓸 수 있으니 아직 저에게는 '편협'이라는 단어조차 어울리지 않을만큼 토대가 취약한 상태입니다. 다행히 이런 글을 먼저 읽음으로 인해, 저의 책읽기 취향이 극단으로 흘러 지적인 편협성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표정훈의 글을 읽는 동안 진정한 리더십(Readership)을 느끼고 깨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아차차! 또 저의 임무를 망각했습니다. 이 코너가 책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책에 대한 얘기는 한 구절도 없이 그저 그 작자에 대한 나의 경외감만 장광설로 늘어놓았습니다. 정신 차리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   목 : 탐서주의자의 책
   지은이 : 표정훈
   펴낸곳 : 마음산책 (초판 출간일 2004.10.10 | 초판 1쇄를 읽음) ₩11,000

이 책은, 대단한 독서가이자 글 써서 생계를 이어가는 출판평론가이자 저술가인 표정훈이, 표현하고文 기억하고史 성찰하고哲 싶은 것들을 엮은 문·사·철의 기록입니다. 그의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경험을 술회하고, 책과 얽힌 여러 기억을 온갖 서적들을 무차별적으로 인용하여 완성한 표정훈의 지적(知的) 여정의 기록입니다.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여정을 따라가기란 정말 쉽지 않음에도 - 앞으로도 그러할 수 없음에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작정 친근함을 느낄 것입니다.

내용에 대해 조금만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거문고를 불쏘시개 삼아 학을 삶아 먹는 일’을 살풍경의 하나로 쳤던 당나라 시인 이상은이 등장하는가 하면, 혁명가 레닌의 여정을 다룬 에드먼드 윌슨의 ‘근대 혁명 사상사’를 언급하다가, 버트런드 러셀의 자서전에서 청소년기의 자위 행위에 대한 고백까지 들먹입니다. 4만권이 넘는 책을 소장했던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폰타치아가 세상을 뜰 때 자신의 책을 밀라노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라고 했던 얘기, 책을 무지 좋아했던 10세기 페르시아의 총리 압불라 카셈 이스마엘은 여행을 할 때 11만 7,000여권의 책을 400여마리의 낙타에 책을 나눠 싣고 다녔다는 얘기 등등 책과 얽히고 얽힌 수많은 얘기를 거쳐 급기야 '읽고 쓴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의 직업병적 자기 규정으로 결론으로  맺습니다.

책 좋아하는 분, 책 읽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고 싶은 분께 '강추'합니다.
옮기고 싶은 여러 구절이 있지만 책에 대한 그의 생각이 가장 잘 표현된 듯한 두 곳을 골라봤습니다.

책은 일사불란한 서가 풍경을 자아내는 수집과 소장 취미의 소중한 대상이어도 좋다. 난장亂場 풍경을 자아내는 마구잡이 잡독가雜讀家의 남획물이어도 좋다. 단 한 줄도 읽지 않고 서가에 고이 모셔둔 채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거실을 장식하여 한껏 뽐낼 요량으로 구입해도 좋다. 책의 오용과 남용을 꾸짖는 모랄리스트의 훈계 따위는 무시할지니, 책을 구하거나 소유하거나 읽거나 구입하는 모든 사람, 모든 경우에 대하여 책의 이름으로 다만 너그러워지고 자유로워질 일이다. (p.232)

독서를 놓고 책은 모름지기 이렇게 읽어야 좋다느니 그렇게 읽으면 해롭다느니, 이런저런 말도 참 많다. 다양한 독서론 혹은 독서법들이 제 나름의 일리를 갖추고 있을 게다. 각자의 취향과 습벽에 맞게 그 일리를 취하면 그만이다. 다만 독서가 행동이라는 점은 분명히 해둘 일이다. 두 발로 땅을 박차며 숨가쁘게 뛰지도 않으면서 달리기에 관해 이런저런 말을 하고 요모조모 궁리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Just Do It 아니 Just Read It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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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8일 예스24 주간리뷰우수작으로 선정됨^^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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